P플랜 돌입 후 곧장 출격 예고
E100 출시를 위한 조건 3가지
쌍용자동차의 단기 법정관리 `P플랜`을 둘러싼 이슈가 연일 뉴스에 오르는 요즘입니다.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다 보니 점점 잊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쌍용차가 작년 7월 처음 공개한 전기차 `E100(프로젝트 명)`입니다. E100는 쌍용차의 첫 전기차입니다. 코란도 차체를 기반으로 하며, 작년 말엔 시험생산과 테스트 주행에도 나설 만큼 상당 수준 상용화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쌍용차 측은 E100에 대해 "패밀리카로 손색없는 공간과 활용성을 갖출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쌍용차가 예정했던 E100의 출시 시기는 올해 상반기입니다. P플랜 돌입이 늦춰지면서 사실상 상반기 출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상용화 단계까지 다다른 만큼 여전히 쌍용차의 `회심의 카드`로 남아있습니다. 만일 쌍용차가 P플랜에 돌입한다면, 곧장 E100를 출시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죠. 하지만 E100 출시까지는 아직 투자 계약 체결, 채권단의 동의, 사업성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이번 주 Fact-tory에서는 E100 출시까지 쌍용차에 남은 과제들을 중간 점검해보겠습니다.
● 쌍용차에 비해 너무 작은 HAAH오토모티브
이제 쌍용차가 P플랜에 돌입하기 위해 남은 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HAAH오토모티브의 투자 확정, ▲채권자들의 회생 계획안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중 핵심 관건은 HAAH오토모티브와의 투자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AAH오토모티브는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2억 5천만 달러, 우리 돈 약 2,800억 원을 신규 투자하는 쌍용차 인수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취재된 내용을 정리해보면, HAAH오토모티브가 쌍용차를 인수할 만한 곳인가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HAAH오토모티브는 미국의 자동차 유통 업체로, 쌍용차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미국 기업정보 데이터업체인 로켓리치(RocketReach) 등에 따르면 HAAH오토모티브의 최근 사업연도 매출(Revenue)은 약 2,040만 달러, 우리 돈 약 231억 원 수준입니다. 쌍용차가 짊어지고 있는 공익채권만 3,700억 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회사의 규모가 너무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HAAH오토모티브는 외부 투자자로부터 쌍용차 투자 자금을 유치 중입니다. 연합뉴스 등 보도에 따르면 HAAH오토모티브의 메인 전략적 투자자(SI)는 캐나다 1개 사, 금융 투자자(FI)는 중동 2개 사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자를 위해 투자를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자연스레 P플랜 진행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HAAH오토모티브가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 렉스턴이 미국에서 팔릴까…`의문투성이` 사업 계획
HAAH오토모티브의 사업성도 문제로 짚입니다. 자동차 유통업체인 HAAH오토모티브는 쌍용차의 생산 차량을 미국으로 가져가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쌍용차 브랜드가 생소한 미국 시장에서 쌍용차 모델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 시장 특성을 반영해 코란도, 렉스턴 등이 주력 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해본다면, 해당 세그먼트는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레드 오션`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미 HAAH오토모티브는 중국 체리자동차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체리차의 SUV인 반타스(VANTAS)와 티-고(T-GO)를 2022년 말 미국에 수입, 판매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HAAH오토모티브의 실제 판매량은 1천~2천 대(매출액 추정치)에 그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보도한 대로 HAAH오토모티브가 쌍용차 모델을 10만 대 가까이 수입·판매하는 건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렇다 보니 HAAH오토모티브가 정부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HAAH오토모티브는 현재 투자 금액인 2,800억 원에 상응하는 운영 자금을 산업은행이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HAAH오토모티브가 우리 정부의 지원을 전제하고 투자를 계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어차피 급한 건 고용을 유지해야 할 우리 정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듣기 위해 HAAH오토모티브 측에 이메일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당장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라며 거절했습니다.
● 출시 직전이라던 E100, 아이오닉5·EV6와 경쟁 가능할까
끝내 HAAH오토모티브가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고, 쌍용차와 HAAH오토모티브와의 투자 계약이 성사되고,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 P플랜에 돌입, E100가 출시돼도 꽃길이 펼쳐져 있는 건 아닙니다. E100 자체의 제품 경쟁력이 물음표로 남아있어섭니다.
사실 E100에 대해 알려진 확인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이름이 `코란도 e-모션`으로 확정됐다는 것과 LG화학에서 생산한 61.5kWh 용량의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 뿐입니다. 회사 측도 전기차 부품이나 구체적인 기술 등 출처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김필수 전기차협회장은 "전기차 자체 개발보다는 외부 업체와의 협력이 유력하다"면서도 협력 대상에 대해선 "국내 중소기업 또는 중국 기업들이 점쳐지지만 아직까지 불확실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정보만으로 추리해봐도 E100가 제품 경쟁력을 갖기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형 전기 SUV가 적었던 탓에 `국내 최초 준중형 전기 SUV`라는 마케팅이 먹혔지만, 이제 시장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테슬라의 모델Y에 이어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기아의 EV6가 속속 등장하며 공간성 좋은 전기 SUV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E100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거나 자율주행 3단계와 같은 높은 기술력을 탑재하는 등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쌍용차는 내부적으로 오는 15일까지 P플랜 돌입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번 주에는 인도중앙은행(RBI)이 마힌드라의 쌍용차 지분을 기존 74.65%에서 25%로 감자하는 데 승인하면서 P플랜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늦어도 다음 주면 쌍용차의 회생 계획안과 HAAH오토모티브와의 투자 계약이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연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쌍용차의 P플랜에 동의하고, 쌍용차를 살리기 위한 지원에 나설까요. 또 쌍용차는 P플랜에 돌입해 E100을 출시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 초 열릴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설명회`와 쌍용차의 P플랜 진입 소식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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