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불거지는 우려들, 좀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증권부 신재근 기자 나와 있습니다.
신 기자, 해외에서는 청약철회권이 이미 도입돼 있다면서요?
상황이 어떻습니까?
<기자>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도 청약철회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방식은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영국은 금융회사의 부담을 조금 덜어줬는데요.
영국은 청약철회권이 부여되는 기간 동안 시장 가격 변동으로 상품 수익률이 하락하더라도 그 책임을 소비자가 지게 했습니다.
상품에 가입한 순간부터 소비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건데요.
반면 우리는 시장 가격 하락에서 오는 손실 책임이 전적으로 금융회사에 있습니다.
청약철회권이 주어지는 기간 동안 시장 가격이 하락하고 가입자가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그 손실분에 대해서도 금융회사가 물어줘야 하는 겁니다.
<앵커>
외국에서는 소비자도 가입을 할 때 신중히 할 의무가 있다 라는 걸 강조하고 있지만 우린 그렇지 못 합니다.
위법계약해지권도 이번에 도입이 되는데,
위법한 계약은 5년안에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말하는 위법한 계약이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기자>
제가 판매업자이고 앵커께서 가입자라고 가정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좋은 상품을 하나 소개해드릴까 하는데 가입 좀 부탁드리면 안될까요?
<앵커>
괜찮습니다. 생각 없습니다.
<기자>
이게 가입만 하면 연 20% 수익을 낼 수 있거든요.
한 번만 좀 부탁드릴게요.
<앵커>
진짜인가요. 확실한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자, 방금 보여드린 것이 `위법계약`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앵커>
왜 그렇죠?
<기자>
먼저 제가 상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안 했고요.
또 연 20% 수익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법에는 상품 판매자가 가입자에게 부당권유를 하거나 불공정영업을 하는 것을 비롯해 총 5가지 판매원칙을 위반했을 때를 위법한 계약으로 명시하고 있는데요.
금융사는 이 요구를 받고 10일 안에 투자자한테 계약을 계속할지 끝낼지 여부를 알려줘야 합니다.
<앵커>
이 부분을 놓고 지금 증권업계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죠?
<기자>
증권사는 계약을 계속할지 끝낼지 여부를 10일 이내에 가입자한테 알려야 하는데,
이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간에 명절 같은 연휴가 끼게 되면 증권사 입장에선 심사 기간이 더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내부적으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위법 계약이 성립되는 범위가 어디까지 해당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고요.
그렇게 되면 증권사와 가입자 간 계약 관계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앵커>
`위법 계약 해지권` 같은 경우는 해외에서는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습니까?
<기자>
해외에서는 `위법 계약 해지권`이 우리처럼 도입된 나라가 없습니다.
영국은 위법계약 해지권 자체가 없고, 일본은 관련 조항은 있으나 금융상품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데요.
영국과 일본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분쟁조정지원서비스만으로 분쟁 해결이 원만하기 때문인데요.
영국은 `금융옴부즈만서비스`를 통해 분쟁조정을 하고 있고, 일본은 대안분쟁조정기구에 의해 분쟁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옴부즈만서비스는요.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없이도 가입자가 회사를 상대로 동일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요.
즉, 소송에 의해 재판까지 가지 않고 옴브즈만이라는 제3자의 관여하에 분쟁을 해결합니다.
1차적으로 가입자와 금융사가 최대 8주간 내부적으로 민원 해결 절차를 가진 뒤, 그래도 이게 해결이 안 되면 그때 옴부즈만의 중재로 분쟁을 조정합니다.
따라서 소송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도 금융감독원 밑에 분쟁조정위원회가 설치돼 있는데요.
그럼에도 금융사나 소비자 양측이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승복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실정입니다.
<앵커>
비슷한 제도인데 왜 우리는 실효성에 의문이 붙는 겁니까?
<기자>
영국은 이 분쟁조정서비스와 관련한 인력이 3,500명에 달합니다.
또 계속해서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고 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데요.
반면 우리는 분쟁조정위원회 인력이 200명 남짓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민원의 홍수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앵커>
또 한가지 바뀌는 게
투자 위험이라든지 이런걸 금융회사가 가입자에게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하는데,
기존에도 금융상품 가입할 때 설명은 의무적으로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판매사는 가입자에 상품의 위험요인이나 가입 시 주의사항을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설명의무 조항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번 라임이나 DLF 사태처럼 불완전판매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상대적으로 소비자가 소송에 있어 시간이나 자금력이 금융사에 비해 열악하다 보니 입증 책임을 회사에 더 묻겠다는 건데요.
따라서 증권사는 이제 모든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녹취나 서명과 같은 방식으로 가입자가 상품 내용을 이해했다는 걸 입증해야 합니다.
증권사 입장에선 현재 이 부분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증권업이라는 것이 전문성을 요구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판매 직원이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가입자에게 설명하고, 또 가입자가 이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앵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번 법이 만들어진 건데,
오히려 소비자가 가입할 상품 선택지를 줄어들게 만드는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이 나온다고요?
왜 그런 거죠?
<기자>
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들을 감안하면요.
취재를 종합하면 앞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가입자가 상품 가입이 적정한지를 포함해 심사 절차를 더욱 강하게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가입자와 계약을 하는 데 있어 향후 법적인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는지를 꼼꼼히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자가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의 폭이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상품 판매가 위축된 상황인데요.
이번 법 시행으로 가입자가 상품을 가입하고 싶어도 자격을 갖추지 못해 가입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증권업계 내부에선요.
투자상품은 운용사가 만든 건데, 그 책임 대부분을 판매사에 지우는 것은 억울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증권부 신재근 기자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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