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vs 인재…수에즈운하 열렸지만 사고 책임공방

입력 2021-03-30 10:38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정상 항로를 되찾으면서 통항이 재개됐지만, 선박 좌초 사건에 대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수에즈 운하가 재개되면서 이제는 이번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조사에 시선이 옮겨지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로서는 사고 당시 불었던 `강풍`이 일단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항해사는 이 신문에 "강풍으로 큰 화물선이 제방 쪽으로 선체가 쉽게 움직일 수도 있다"라며 "초대형 화물선에 종종 일어나는 일로, 바람이 30∼40노트(약 15∼21m/s)로 불면 선박이 좌초할 수 있다"고 말했다.
WP는 사고 선박인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에 탄 수에즈 운하 통항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이집트인 일등 항해사 2명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일등 항해사와 선장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사고 당시 이들과 선장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초대형 선박을 운항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운하전문 일등항해사는 경력이 30년 이상인 베테랑급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일등 항해사는 "1990년대에 유조선이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했지만 예인선 1척으로 해결했다"라며 "그러나 요즘은 화물선이 훨씬 더 커지면서 수에즈 운하 전문항해사의 역할이 과거처럼 그저 화물선을 끌고 가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기상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적, 기술적 실책도 조사 범주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WP는 항해사라는 직함과 다르게 운하 전문항해사가 배를 직접 운전하지는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항해사는 직접 운전하지 않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실질적 지식을 바탕으로 조언하는 역할이다"라며 "항상 선교에 있는 선장이 이 조언을 참고하고 취사선택해 조타실, 엔진실, 예인선에 지시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 해사법에 따르면 선장은 항해사가 운전상 문제를 항상 파악하고 더 나은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도록 해야 하고 따라서 선박 사고의 최종 책임은 선장이 져야 한다고 해설했다.
그러나 이들 운하전문 항해사의 역할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도 짚었다.
해운 관련 책을 쓴 로즈 조지는 BBC방송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10만∼30만달러(약 1억∼3억원) 통항료를 내야 할 뿐 아니라 이집트의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전문항해사를 태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2010년에 탔던 중형 컨테이너선의 선장은 42년 경력에 수에즈 운하를 수도 없이 통과했는데 그는 `이집트인 선원(항해사)이 특별 선실 안에 앉아 있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이집트 법엔 수에즈 운하를 운항하다가 벌어진 사고의 원인이 이집트인 전문항해사의 실수라고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컨테이너선 기관장 경력이 있는 마크 필립 로릴라는 "이런 면책 규정이 불공정하게 보이겠지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라며 "해상 사고의 법적 책임은 선박, 즉 선주와 보험사에 귀결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좌초 사고가 인재일 경우 악의를 가진 세력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자밀 재퍼 미국 조지 메이슨대 국제안보연구소장은 더힐에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단 한 건의 폭발, 살해도 없이 매우 빠르게 국제 물류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라며 "(수에즈 운하를 막으려면) 배 한 척만 손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악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해운의 요충지를 막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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