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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빈자리 메운 독일 프랑크푸르트…EU 재통합은 가능할까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1-04-12 16:3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세계인의 관심이 온통 쏠려있는 사이에 유럽연합(EU)에서 첫 탈퇴 회원국이 나왔다. 바로 영국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회원국이 난민, 테러, 경기 침체 등에 시달리고 있으나 해결책은 고사하고 대응조차 신속하게 못하는 ‘좀비 EU’ 때문이다.
최대 관심사는 영국의 탈퇴를 계기로 EU와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유럽 통합은 단일 세계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 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 넘는다.

유럽 통합은 두 가지 길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가 이번에 영국의 탈퇴로 27개국으로 줄어들었다. 다른 하나는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EEU)에 이어 유럽정치통합(EPU), 유럽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통합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난관에 부딪쳤다. 불완전한 통합(통화통합+재정 미통합)으로 언젠가는 불거질 것으로 봤던 재정위기도 터졌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영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이번 탈퇴를 계기로 ‘확대’ 단계에도 상당한 시련이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다.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EU 탈퇴 이후 영국 경제가 독자적으로 회생할 경우 회원국의 탈퇴 움직임은 의외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회원국 내부에서는 분리 독립 운동이 고개를 들 가능성도 우려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이어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 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는 당사국인 영국 경제부터 타격이 불가피하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자국 경제가 2030년까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천300파운드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규모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남아 있는 회원국 경제도 충격이 줄 수밖에 없다. 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유럽 경제성장률이 1%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예측기관이 대다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유로화 가치도 유로존 출범 초에 보였던 등가 수준(1유로=1달러)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런던이 뉴욕에 이어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브렉시트로 영국을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빨리 반영하는 주식시장의 경우 브렉스트가 국민투표로 확정된 2016년 6월 이후 뉴욕과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로 이동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그 중에서 프랑크푸르트가 가장 빨리 부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공식 명칭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인 프랑크푸르트는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ㅤ쾰른에 이어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게르만족의 하나인 프랑크족이 강을 건넌다는 포르트(ford)에서 유래된 프랑크푸르트는 라인강을 가장 쉽게 건널 수 있는 지역에 건설된 도시라 오래전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음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항공수요가 많은 공항 중의 하나로 꼽혀왔다. 이 때문에 수많은 다국적기업과 유럽기업의 본부가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도이체 방크, 코메르츠 방크 등이 있는 국제금융 중심지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앞으로 국제금융 종합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세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다. 가장 중요한 독일 경제가 코로나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을 잘 흡수하면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거시경제 여건을 갖추고 있는 점이다. 유럽재정위기에서 입증됐듯이 유럽 통합이 흔들릴 때마다 독일 경제가 최후의 보루역할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신인도 면에서 미국보다 월등히 낫다. 미국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진 데 이어 정부의 재정지출 남발로 또다시 강등당할 위험이 상존한다. 하지만 독일은 재정수지 뿐만 아니라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자체적으로는 증강 현실 시대에 국제금융 중심지로 갖춰야 할 필수조건인 클라우드와 핀테크, 블록체인 기업이 집중돼 있고 독일 경제의 자랑이기도 한 막강한 제조업과 컨설팅, 미디어 기업이 받쳐주고 있는 복합도시다. 세계 최대 규모인 무역박람회인 메세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오토쇼, 음악 박람회, 도시 박람회도 매년 열린다.
분데스방크에 따르면 영국에서 활동해온 비독일계 금융기관이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 금융시장으로 이전시킬 자산의 규모가 무려 8천170억 달러(약 8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ECB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탈출할 것으로 추정한 자산인 1조 3천억 유로(약 1천718조 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로이터통신도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세계 초일류 금융사가 브렉시트 이후 독일로 옮기겠다고 공언한 자산의 규모만 해도 3천500억 달러(약 46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했다. 독일 금융감독원(BaFin)에 영업신고를 한 글로벌 금융업체가 지금까지 60곳이 넘는다는 것도 프랑크푸르트가 런던을 대체할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조셉 바이너(J. Vin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효과가 무역전환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어떤 형태로든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잔존 회원국은 유럽 통합의 차선책, 이를테면 ‘F-EU(France+EU)’ 방안을 빠르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F-EU’는 프랑스를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 독자적인 해결 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프랑스는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의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탈퇴(exit)’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 졌다.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읽어야 한국 경제도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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