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최근 디지털자산 수탁업체에 지분투자를 하는 등 암호화폐 시장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거래소와의 제휴에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데다, 거래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신한은행, 농협은행, 케이뱅크는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들과 제휴를 맺고, 6개월 단위로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코빗과, 농협은행은 코인원·빗썸과, 케이뱅크는 업비트와 계약을 맺고 있는데, 오는 7월 경이면 대부분 기간이 만료된다.
해당 은행들은 현재 재계약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전에 비해 심사가 더 까다로워질 수는 있어도, 4대 거래소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무난히 재연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존에 제휴해 오다가 갑자기 관계를 끊는 건 힘들지 않겠냐”며 “은행연합회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관련 부서들이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서 발급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나머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다.
현재 암호화폐거래소는 국내에 200여개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존에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들 조차도 신규 거래소 제휴 확대는 비중있게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로 수수료 수입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리스크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민원도 발생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암호화폐거래소가 현재 크게 매력 있는 제휴처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어 신규 제휴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B 은행 역시 ”기존 거래소와의 재연장은 검토할 지언정 신규 거래소 제휴 확대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외 다른 은행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카카오뱅크가 “하반기 상장 등 여러 일정들이 많은 관계로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 검토 계획이 일절 없다”고 밝힌 데 이어 SC제일, 씨티, 수협은행 등도 제휴를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가 뭘까. 문제가 생겼을 때 은행이 책임을 다 떠안는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은행권이 암호화폐 시장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중은행들은 암호화폐 시장에 지분투자를 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기업 해시드, 해치랩스와 함께 디지털자산 수탁회사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에 투자한 데 이어, 신한은행도 올해 1월 코빗, 블로코, 페어스퀘어랩과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대한 전략적 지분투자에 나섰다.
우리은행 역시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과 블록체인 관련 기업 지분투자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는 지분투자와는 다르게 조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은행이 암호화폐거래소와 제휴를 맺는다는 것은 가상자산 거래에서 실명확인은 물론이고 위험평가, 분석까지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이하 특금법)으로 인해 암호화폐거래소는 오는 9월 24일까지 은행의 실명 확인 계좌를 입출금 계좌로 연결하고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은행이 거래소와 실명계좌 거래를 맺을 때 자체적으로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 위험도와 안전성, 건전성 등을 평가해 결정하도록 했다.
당국은 한 걸음 물러선 채 상세한 평가항목과 기준 등을 모두 은행에게 맡긴 것이다.
실제로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문제가 터졌을 때 은행은 물론이고, CEO에게로까지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지분투자만으로도 암호화폐 시장 성장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다고 본다”며 “거래소 제휴는 아직까지 리스크가 큰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 FIU에 따르면, 당국에 들어온 가상자산사업자(암호화폐 거래소·보관관리업자·지갑서비스업자) 신고 건수는 0건이다.
9월까지 신고하지 못하면 불법으로 간주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은 물론이고 해당 거래소도 폐쇄 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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