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삶은 개구리 신드룸(boiled frog syndrome), 일본형 복합불황..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 동안 한국 경제 앞날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위기론이다.
한국은 경제 개발 추진 이후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 특히 청년층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인력 수요와 공급 간의 병목 현상과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 필요성 감소와 소비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현금 보유는 사상최대규모다.
부패와 뇌물 사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정도는 정치적 영향력과 행정 규제에 비례한다.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정착된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종전만 못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경제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golden time)’까지 놓쳐 이제는 한국 경제도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예금회전율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눈에 띠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부양 대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 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경험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 위상에 맞게 내수 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 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 현상까지 겹치면서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한국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가.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외환위기가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유동성 위기를 해결한 후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했다. 한국도 외화 유동성을 확보한 이후 잦은 정책 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채 20년이 지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시스템 위기와 실물경기 위기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에 따라 대처능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이때 투기 요인이 차익 실현으로 연결될 경우 극복했다고 봤던 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 ‘위기 재귀론’이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어떤 정부든 모두가 경제 안정성이 계속 흔들리고 위기론이 가시지 않는 것은 `통계 수치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입법과 정책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 경제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출이 세계 경제 환경이나 환율이 조금만 불리하게 되면 크게 감소돼 곧바로 위기감이 닥치는 소위 ‘천수답 구조’를 ‘수리안전답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단기 처방은 금물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처럼 경제우선 정책을 예산조기집행, 시도 때도 없는 추가경정 예산 편성과 같은 단기적인 대증 처방에 의존할 경우 고질병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 진다. 오히려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에게도 자국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해외 진출한 기업도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개혁정치이든 산업정책이든 간에 정책의 일관성과 명확한 기준이 전제돼 시행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기득권 때문에 핵심규제 사항을 풀지 못하거나, 특정 기업에게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신규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가시지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 기업의 ‘무국적화’를 촉진하고 산업공동화와 실업증대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도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한탕하고 경기가 나쁠 때에는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화전인식 경영’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실망스럽다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는 생존을 위한 의무다.
국민에게도 경제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도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론을 낳게 하고 국민이 쉽게 공감하는 원인이 된다.
정책당국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갈수록 국민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책당국(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이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추진되면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줘야 한다.
올해 하반기 이후에도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있다. 최대 과제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는 예측도 있어 주목된다. 최소한 잠재수준 정도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해법(global solutions)을 통해 인구 문제를 해결하고 친기업 정책으로 4차 산업 등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각 분야에 걸쳐 개혁을 통해 기득권을 놓고 벌하는 가치와 이념 대결을 해소해 나가는 과제는 가장 중요하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앞으로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아르헨티나 축구 신동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공공선(公共善·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한다면 각종 위기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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