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이 세균무기(생화학무기) 사용 연구와 인체실험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중국 매체가 보도했다.
16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731부대 범죄증거 전시관(하얼빈 소재)의 진청민(金成民) 관장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731부대 부대장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1894∼1986) 중장의 진술서 사본을 처음 공개했다.
1942∼45년 731부대에 재직한 기타노는 패전 후 미군의 심문을 받은 뒤 서면으로 제출한 진술서에서 부대 창설자 이시이 중장에 대한 사항, 부대 임무, 편제, 연구 성과, 세균무기 등 5개 부문에 걸쳐 체계적으로 진술했다고 진 관장은 전했다.
기타노는 전임자인 이시이 중장이 관동군 근무 명령에 없는 내용으로 연구했고 부대원 일부를 조직해 비밀리에 세균무기 연구를 했다고 진술했다. 또 애초엔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했으나 나중에 국제인도주의 등을 위반한 세균무기 연구를 했고, 결국 `비밀부대`가 됐다고 말했다.
진 관장은 "기타노는 진술 때 처음에는 731부대의 범행이 일본의 국가 행위가 아니라 이시이 시로의 행위라고 말했고,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추후 미국 측의 조사 목적이 처벌이 아닌 세균전 데이터 확보에 있음을 간파하고부터 많은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 관장은 기타노가 전시 일본 의학 및 의약 잡지에 발표한 논문이 확인된 것만 59편인데, 그중 최소 2편은 인체실험을 통해 작성한 것이며, 일부 논문에서는 인체 실험을 하고도 `원숭이`와 같은 용어로 은폐했다고 전했다.
기타노의 진술서 원본은 현재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다.
기타노는 731부대 만행의 책임자임에도 패전 후 기소 및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731부대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처벌 면제와 부대의 세균전 연구성과를 맞바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타노는 일본 패전 후 중국 상하이(上海)에 포로로 압송돼 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후 1946년 1월 석방돼 일본으로 귀국한 뒤 제약회사 임원 등으로 일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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