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 대표적 장기미제 `1999년 변호사 피살` 사건의 피의자가 국내로 송환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20일 제주경찰청은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모(55)씨가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9년 11월 5일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삼거리에 세워진 쏘나타 승용차 운전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모(당시 45) 변호사 살인을 교사한 혐의다.
당시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과 배를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도 흉기에 관통당한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과 가까운 중앙지구대에 7개 팀 40여 명 규모로 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왼쪽 팔꿈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숨진 이 변호사의 오른손에는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고, 차량 내부는 물론 차량 밖 도로에도 혈흔이 낭자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이 변호사가 차량 밖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렸고, 이를 피해 차 안으로 들어와 운전대를 잡으려다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종류와 다르고, 살해 수법도 매우 잔인하다는 점 등이 주목됐다.
당시 현금이 든 지갑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 금품을 노린 강도라는 가능성은 배제됐다. 치정에 의한 범행, 불량배에 의한 우발적 범행,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에서 수임 사건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에 의한 계획적 살인 등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1년여간 사건을 수임하지 않았고 치정 문제도 없었다는 주변 진술이 이어졌다.
현장에서는 범인을 추정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 경찰은 목격자를 찾는 전단 1만여 장을 배포하고, 범인 검거 현상금 1천만원까지 내거는 등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거나 차량마다 블랙박스를 달고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고, 계속되는 수사에도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 수사는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했고, 수사본부는 1년여 만에 해체됐다.
이 사건은 6천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기록을 남긴 채 발생 15년 뒤인 2014년 11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다.
그 후로 21년 만인 지난해, 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인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이었던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조직 두목인 백모 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았고 동갑내기 손모 씨를 통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살인을 교사했다고 자백한 셈이다.
제주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곧바로 재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김씨가 인터뷰한 내용이 자백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캄보디아에 있던 김씨를 국내로 송환해 지난 18일 제주로 압송했다.
또한 이튿날인 19일에는 김씨에 대해 살인 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씨의 신병은 확보됐지만, 김씨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가며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당시 이 변호사를 살해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경찰이 추정하는 대로 김씨가 실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등 의문점이 수두룩하다.
특히 김씨가 자신은 교사범이라고 주장했지만, 흉기 모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진술을 상세히 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그가 실제 살인을 했거나 현장에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김씨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김씨에게 범행 지시를 했다는 당시 두목 백씨, 실제 범행을 저질렀다는 손씨를 조사해봐야겠지만 두 사람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감춰왔던 진실을 말할 것인지, 이번 수사를 통해 22년 전 사건의 실체가 드디어 선명하게 드러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