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리가 사나워 눈뜨기조차 두려운 날
질질 다리를 끌고 새벽강에 간다
감긴 눈을 비비며
강물도 앞선 강물을 따라갈 뿐
아무 생각이 없기는 마찬가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래도 강물은 절대 강을 벗어나지 않는다
졸린 눈을 끌고서 새벽강에 간다
폭풍우가 몰아친 뜬 새벽
어둠 보다 까만 밤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번개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쏟아붓는 소낙비
이때다 싶어 이불 속을 파고드는데
떠들썩한 새들의 지저귐
창문 밖이 환해졌다
칠흑 같던 밤의 고통은 흔적도 없이
어제처럼 또 흐르는 메콩강
어둠을 물고 있는 새벽강에 간다
사람은 더 이상 신비로움이 아니다
가까이 오면 달아나는 무서워진 세상
새벽 강변길을 걷다가도
마주 오는 이가 있으면 멀찌감치 돌아선다
바람에 옷깃이라도 스칠까봐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혼자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타인은 결코 타인일 뿐인가 보다
메콩강 물결따라 흐르는 뱃노래
세월을 낚듯 그물을 따는 어부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것은
강물과 물고기뿐 만 아니다
동이 트기 전 물살을 가르고
한 주름 물고기를 길게 꿰어
어린 딸에게 다급히 던져주고
한덩이 바람밥으로 뱃속을 채우고
다시 강으로 저어간다
저 멀리 무지개가 떠 있다
뱃사람들이 찾아가는 그 곳
구름너머까지 불뚝 솟은 오색등불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강 건너 태국까지도 하늘 길을 만들어
사람 대신 안부를 전한다
꿈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무지개를 마구 찍는 사람들
순식간에 사라질 무지개
그 무지개를 잡으러
새벽강에 간다
새벽강변에는 늘
배고픔이 서려 있다
비가 쏟아지는 길모퉁이
물고기 꾸미를 펼쳐놓고
말똥구리 같은 앳된 소녀
콧등에 빗방울을 얹고서
강둑에 풀 뜯는 말처럼 제자리에서 서서
멀어진 발걸음에 두 귀만 쫑긋
오는 사람은 가고 없는데
주인 없는 개들만 문전성시
먹잇감을 찾으러 허기진 것들은
새벽강에 다 모였나보다
서쪽으로 가다보면 막다른 강변길
주인 잃은 빈 의자가
밧줄에 묶여 시름시름 앓고 있다
수없는 발길질을 버티고
무릎과 무릎을 맞닿으며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던 옛 시절
이음 못이 빠지고
받침목마저 바스락바스락
맨바닥에 몸 저 누운 채
흐드러지게 핀 갈대밭만 바라본다
대여섯 노인들이
말뚝에 자전거를 걸쳐놓고
주름진 입담들
간혹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다이(할수 있다)와 버다이(못한다)
말끝마다 대답이 한결같다
휘어진 등을 기둥에 기대고 서서
강바람이 불때마다 남겨진
몇 톨의 머리카락을 다시 끌어 모으고
흐트러지면 다시 끌어올리고
바퀴살이 빠진 자전거처럼
입술을 깨물어도 헛바람이 인다
동쪽 하늘에 짙은 구름벽을 타고
먼동이 떠오르자
바람도 멈칫
구름도 멈칫
강물 위 물안개도 엉거주춤이다
빨간 승복 입은 스님도
탁발 암송을 마치자마자
합장하는 두 손을 허공에 남겨둔 채
골목길을 돌아 사라졌다
아침해를 맞으려
새벽강도 강물을 급히 헹구고 있다
새벽강에 간다
푸른 멍이 든 새벽강
수많은 원망들을 듣고서 내뱉지 못한 채
오늘도 어느 슬픔인가를 또 담아야한다
습관처럼 질문을 풀어
강물에 던져보지만
돌처럼 단단해진 강물
행여 대답이라도 할까봐 두려워서
앓던 문장을 꿀꺽 삼키고
새벽강만 바라본다
칼럼: 황의천 라오스증권거래소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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