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시장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분야가 바로 고용시장인데요.
일자리 정부 자처하며 양질의 일자리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지난 4년을 되돌아보면 결과는 초라하기만 합니다.
비대면 문화 확산과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정책에도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임원식 기자입니다.
<기자>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주에 열렸던 정부의 청년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 `청년희망 온(ON)` 행사 현장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인데요.
이 `청년희망 온`을 통해서 현대차를 비롯한 삼성과 LG, SK 등 국내 대기업 6곳에서 청년 일자리 17만9천 개를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막상 대기업에 기대어 SOS를 치는 장면, 사실 과거 정부에서도 반복됐던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고용 성적표는 `고용 참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초라하기만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며 야심차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경제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고용 탄력성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15세 이상 고용률은 66.8%에 그쳤습니다.
이는 미국(71.3%)과 독일(79.7%), 일본(77.7.%)은 물론이고 OECD 평균(68.7%)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전 정부의 일자리 성적과 단순 비교를 해봐도 현저히 떨어지는 수치입니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여성, 청년 일자리 성적 또한 그리 나아진 게 없습니다.
여성 고용률의 경우 70%를 훌쩍 뛰어넘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57.8%에 그치며 OECD 35개 나라 가운데 30위에 머물렀습니다.
청년 일자리는 더욱 심각한데요.
OECD 평균 청년 실업률이 지난 6년 새 5.4% 포인트 떨어지는 동안 우리나라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체 실업률의 2.3배 수준인 9%로, 체감 실업률은 22%대를 유지해오다 25%대로 껑충 뛰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경직된 노동시장 또한 개선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시장 유연성 144위, 임금결정 유연성 84위, 노사협력 130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현 주소입니다.
이른바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유연성을 크게 개선했다는 독일과 비교하면 우리의 노동시장은 갈 길이 한참 멀어보입니다.
비대면 문화 확산과 디지털, 스마트 경제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자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과거 시절과 같은 정규직, 친노조 중심의 노동 정책과 규제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대전환의 시대, 국민 모두가 체감할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송민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정의선 / 현대차그룹 회장(지난 22일) : 회사 내부에서도 많은 부분이 선순환해서 회사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게 해야 하는 것이 회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회사가 같이 고민하고 협조하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부가 요청한 청년 일자리 창출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고용 확대가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무조건 많이 뽑는 게 아니라 곧바로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양질의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를 적기에 뽑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유능한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부겸 / 국무총리 : `정부가 할 일을 안 하고 기업을 어렵게 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기업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하느냐`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뭐 했냐 하면 현대차그룹하고 고용노동부가 청년고용 응원 멤버십 가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김 총리가 말한 `청년고용 응원 멤버십` 역시 기업이 채용할 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는 아닙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 사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하는 것을 같이 촉진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저희가 몇 명을 채용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요. `직무 경험이 부족하다`, `기회가 없다`는 요구가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충족을 하고자 시작한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저 형식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기업에게 정부의 부담을 떠넘기기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청년 일자리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이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지만 /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시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기업 규제형 노동 정책을 개선한다면 기업이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확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기업들이 많은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해외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국내로 눈을 돌리고 되고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같은 신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국경제TV 송민화입니다.
<앵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방안에 대해 전문가와 더 짚어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모셨습니다.
저희가 리포트로도 살펴 봤지만, 현재 채용 시장이 양극화 얘기가 나올 만큼 기술이라든지 연구개발에 치우쳐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기업과 구직자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용춘 /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외국에서 기술을 가져와서 생산 위주로 했다면 지금은 세계적으로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고숙련 R&D가 증가하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전략을 잘 짜야 하는데 사라지는 일자리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거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썼으면 좋겠는데요.
코로나19 등으로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따라서 기업과 구직자 다같이 일자리 윈윈(Win-Win)하려면 일자리 시장 변화에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선 산업 측면에서 신산업 진출과 사업 전환 등의 사업재편을 적극 지원해서 전체 일자리 규모를 늘려야 합니다.
산업과 기술의 대전환기에 R&D, IT 등 전문 기술직에 대한 일자리 수요뿐만 아니라 생산직 일자리 같은 것도 함께 증가했는데요.
실제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S사의 경우 5년간 개발직이 약 7천 명 증가할 때 생산직도 약 3천 명 증가했으며,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2025년까지 일자리 약 1200만 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R&D 투자나 신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이나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구직자들이 산업수요에 맞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일자리 예산 비중을 보면, 다른 나라보다 직접 일자리 예산 비중이 높고 직업훈련 예산 비중이 낮은데, 직업 훈련 예산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직접 고용 예산은 당장 통계적으로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효과는 있지만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직업 훈련은 중장기적으로 고용률 증대 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KDI, 2014)도 있고, 또 생산성 증대로도 이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앵커>
최근 지역 상생형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김용춘 /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아직 성패를 단정짓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세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할 때 가장 애로로 꼽는 것이 경직적인 노동시장, 강성 노조 문제였습니다.
우선 광주형 일자리 특징은 노조가 없고 호봉제가 아닌 시급제로 지급하는 등 적정 임금을 지급키로 했는데 우리 산업에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광주형 일자리에서 일하는 근로자 대다수가 청년인데요.
우리나라 청년 실업 특히 지방의 청년 실업난이 심각했는데, 이를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사민정 모두가 머리를 함께 맞댔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보는데요.
다만 최근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이런 모델들이 확산되고 있는데 시장의 수요나 지속가능성, 투자 가능성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시작했다가 혹시라도 기업이 무너지면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앵커>
이번엔 기업의 채용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기업은 오랜 기간 대학과 손잡고 채용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 해소엔 뚜렷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 모습입니다.
<김용춘 /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채용연계 프로그램의 문제라기보다 고질적인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전공과 직업이 불일치하는 사람이 약 50%로 OECD 국가 중 1위로 매우 심각한데요.
현장에서도 한 쪽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선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대학교 정원 규제 같은 것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학교 정원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보니 산업의 수요가 있어도 새로운 학과 개설이나 정원을 늘리기 매우 어려운 구조인데요.
예를 들어 미국 스탠포드 대학은 산업 수요에 따라 2008년 141명이었던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2020년 745명으로 5배 이상 늘렸으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2008년부터 12년간 입학정원이 55명으로 고정되었다가 정부의 2019년 AI국가전략 계획에 따라 2020년 들어서야 겨우 70명으로 증원됐습니다.
지금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해 볼 때 보다 유연하고 빠른 교육 시스템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우리나라 산업 구조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좋은 일자리가 제조업 중심인데요.
요새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다양한 서비스업 등을 다변화한다면 보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에게 취업의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
<앵커>
현대차 등 많은 기업의 노조가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신규 채용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있는데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용춘 /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일단 지금 청년 실업률이 워낙 심각한 상태(체감실업률 25%, 고용률 OECD 국가 중 38개국 중 31위)이기 때문에 정년 연장은 시기 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정년 연장 시 청년 일자리에 부정적이라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유연성은 크게 고용의 유연성, 근로시간의 유연성, 임금 결정의 유연성 세 가지 측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용의 유연성 측면에서는 우선 정규직 과보호 문제뿐만 아니라 파견·기간직 근로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좀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고요.
근로시간의 유연성 관련해서는 엄격한 주52시간제, 즉 우리나라는 일별, 주별 다 상한이 정해져 있고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 기간이 짧은데요.
그래서 이런 규제들을 좀 완화하거나 많이 일할 때 근로시간 저축해 뒀다가 근로자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쉬는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저축제 같은 제도 도입하면 좋을 듯합니다.
임금 결정의 유연성 관련해서는 최저임금 지역별, 산업별 차등적용이나 임금피크제 활성화, 성과 중심의 연봉제 활성화 등이 있습니다.
<앵커>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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