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량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밑돌아
미국발(發) 금리인상 예고 등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시장에도 하락 지표들이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20개월 만에 하락 전환됐고, 연초 청약 열기도 종전보다 시들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정부의 `돈줄 죄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값 상승을 예견했던 전문가들 사이에도 집값이 최소 대선 전까지 약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늘고 있다.
27일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01% 하락하며 20개월 만에 하락 전환됐다. 지난해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경기도의 아파트값도 금주 보합을 기록하면서 상승세를 멈췄다.
집값 하락은 최근의 거래량 급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총 1천88건(26일까지 신고 기준)으로 파악됐다. 12월 거래량으로는 역대 최저로,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2월(1천523건)보다도 적다.
지난해 9∼1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 역시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최근 거래 절벽은 심각한 상황이다.
작년 8월 이후 본격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와 대출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대선 이후 정책변화 등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관망세가 짙어지며 급매물만 팔리는 형국이다.
특히 지난해 다주택자를 대신해 일명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빚으로 투자)로 집을 사며 집값과 거래량을 떠받쳤던 2030 세대들이 매매는 물론 전세대출까지 강화되면서 `돈줄 죄기`가 이어지자 주택 구매를 줄였다.
이에 따라 거래가도 하락중이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지난해 11월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전월 대비 0.15% 하락했고, 서울 아파트도 전월 대비 0.79%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전국 아파트 거래 현황` 자료에서도 작년 12월 이뤄진 아파트 거래 2만2천729건(신고일 1월18일 기준) 가운데 이전 최고가보다 가격이 하락한 거래가 79.5%(1만8천68건)로, 80%에 육박했다. 서울의 하락 거래 비중도 54.3%로 하락 거래가 절반을 넘었다.
수요 감소 여파로 지난해까지 없던 매물이 최근들어 적체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고가주택이 많아 애초 담보대출이 안되는 강남권 역시 최근 거래 침체 장기화로 직전보다 하락한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11월까지 최고가 계약이 이어졌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이달 11일 전용 76.79㎡가 24억9천만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인 지난해 11월 26억3천500만원에 비해 1억4천500만원(5.5%) 내린 것이다.
또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전용 116.19㎡는 지난달 17일 직전 최고가(28억5천만원)보다 1억5천만원 낮은 27억원에 팔렸고, 리센츠 전용 84.99㎡는 지난달 4일 11층이 25억7천만원, 이달 2일 5층이 25억원에 팔려 직전 최고가(26억2천만원)보다 5천만∼1억원가량 낮은 금액에 계약됐다.
매매에 이어 수도권 전셋값(-0.02%)도 약세로 돌아섰다. 갱신계약이 늘어가는 가운데 대출 규제로 신규 전세는 가격을 낮춰야 계약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잘나가던 청약 열기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청약홈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에 전국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총 1만129가구로, 1∼2순위를 합한 평균 청약 경쟁률은 16.7대 1이었다. 이는 작년 1월 경쟁률(17대 1)보다 낮아진 것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쟁률은 17.7대 1로 지난해 1월의 29.7대 1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올해부터 중도금과 잔금 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키로 하면서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 청약 대열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은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내 사전청약 물량 증가로 인해 공공아파트로 청약 수요가 분산되고 있고, 최근 집값 하락 조짐이 확산하고 있는 것도 청약률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분양한 서울 강북구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는 고분양가 논란 속에서도 1순위 평균 경쟁률이 평균 34.43대 1의 양호한 경쟁률을 보였지만 100대 1의 경쟁률을 넘겼던 지난해보단 청약 열기가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줍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인기를 끌던 무순위 청약의 인기도 예전보다 시들하다.
지난 24일 잔여 17가구에 대해 무순위 청약을 받은 부천시 원종 길성그랑프리텔은 전용면적 69㎡에서 5가구 미달이 발생했고, 같은 날 무순위 청약을 한 광주 남구 봉선 유탑메트로시티도 전용 65㎡에서 7가구가 미달됐다.
청약통장과 무관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오피스텔 시장도 최근 분양률이 떨어지고, 초기 미계약이 예전보다 늘면서 경고등이 커졌다.
부동산114 여경희 연구원은 "최근 정당 당첨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계약률도 예전보다 낮은 분위기"라며 "분양가 9억원 미만은 대출 의존도가 높았는데 올해 강화된 DSR 영향을 받으면서 올해 최근 1∼2년만큼의 청약 과열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값 하락 전환 등 주택 시장에 이상 기류가 흐르면서 그동안 집값 상승을 전망해온 전문가들도 하락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일단 이달부터 DSR 등 개인별 대출규제가 더 강화된 가운데 미국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이후 올해 3번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내 기준금리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국은행의 선제 금리 인상으로 2% 중후반이던 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5% 중반으로 높아졌고, 6%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정책의 대변화가 예상되는 대선 전까지는 일단 약보합세 기류가 확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연초 눈치보기 장세가 지속되며 거래 감소가 불가피한 가운데 상반기까지 시세보다 싼 매물만 팔리는 `급매물 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우병탁 부동산팀장도 "예상외로 빠른 금리 인상도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적어도 대선 전까지는 현재의 약보합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은 "현재 시중은행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승 이상으로 주담대 금리를 올리면서 주택 구매자들의 부담이 급격히 커졌다"며 "대선이라는 불확실한 정책 변수도 있어 상반기는 하락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예상했다.
거래 감소 속에 급매물 거래가 장기화하면 결국 시세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영끌·빚투에 나섰던 2030세대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는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일단 여야 대선후보가 일제히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유예 공약을 내세우고 있어 이 정책이 시행되면 보유세 부담을 못 이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한꺼번에 내놓을 것으로 보여 집값도 일정기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양도세와 더불어 보유세 인하 정책까지 동시에 추진할 경우 일부 다주택자들은 다시 버티기에 들어가며 집값 하락세가 단기에 끝나거나 낙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
여야 대선 공약중 하나인 재건축 규제 완화나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연장 등 개발 공약들은 반대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불쏘시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동성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선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 새 정부 정책 변화 등에 따라 장기간 상승한 집값이 곤두박질치는 `대세 하락장`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2023년 이후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 증가까지 겹쳐 최소 1년 이상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주택가격 안정은 급격한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 등 돈줄 죄기 영향이 커 보인다"며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감소, 하반기 계약갱신청구권 종료 후 나올 신규 전세 거래의 파급력 등 상승 변수도 만만치 않아 다른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현 정부내 집값을 잡기 위해 선진국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실시한 강도높은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랠리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장기간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박원갑 위원은 "올해 상반기는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하반기는 상승하는 `상저하고` 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장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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