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중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 병증 가운데 하나가 혈전증(thrombosis)이다.
지금까지 코로나19 혈전증은 감염 초기의 약한 면역 반응과 관련이 있는 거로 알려졌다.
항체를 만드는 B세포나 감염 세포를 파괴하는 `킬러 T세포`가 코안 등의 `점액 통로`(mucus passages)`에 적게 생기면 병세가 위중해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점액 통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첫 길목이다.
감염 초기 점액 통로의 면역 방어에 실패한 코로나19 환자는 나중에 단핵구, 킬러 T세포 등의 면역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폐 염증이 생긴다.
혈전증을 유발하는 혈소판 생성 세포의 증가도 이런 중증 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환자에게 혈전증이 생길 때 `불량(ROGUE)` 자가항체가 직접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원래 혈관엔 혈전 생성에 저항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이런 악성 자가항체가 이를 교란한다는 게 요지다.
미국 미시간대 의대와 국립 심장 폐 혈액 연구소 과학자들이 함께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7일(현지 시각) 미국 류머티스학회 저널 `관절염과 류머티즘`(Arthritis & Rheumat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코로나19 입원 환자 250여 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해 `항인지질 자가항체`(antiphospholipid autoantibody) 수치가 매우 높다는 걸 발견했다.
이 자가항체는 루푸스병 같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의 동맥과 정맥에 혈전이 생기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가항체에 양성 반응을 보이면 `항인지질 증후군`(antiphospholipid syndrome)을 의심하기도 한다.
혈전증과 유산증(반복적 유산)이 이 증후군의 주 증상이지만, 혈전으로 인한 피부, 내장, 신경계 등의 허혈이나 경색이 생기기도 한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았을 때 그런 것처럼 항체는 보통 병원균 감염의 중화에 도움을 준다.
자가항체는 전혀 다르다. 면역계의 표적 오인으로 생성되는 자가항체는 정상적인 자기 기관을 공격한다.
연구팀은 2020년 동물 실험 통해, 코로나19에 걸리면 자가항체의 작용으로 눈에 띄게 많은 양의 혈전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 연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19가 위중한 상태로 가면 항인지질 자가항체가 혈관 내벽 상피세포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혈관 상피세포는 혈전 생성을 차단하는 방어 능력을 상실했다.
논문의 제1 저자를 맡은 스후이 박사(류머티스학 연구원)는 "혈관 상피세포에 이런 자극이 가해지면 건강했던 혈관이 끈끈해진다"라면서 "이렇게 변한 혈관 벽엔 다른 세포가 많이 끌려 와 혈전이 더 잘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항인지질 자가항체가 직접 혈관 상피세포를 자극한다는 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실제로 코로나19 환자의 혈액 샘플에서 항인지질 자가항체를 제거하면 혈전을 유발하는 혈관 상피세포의 활성화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확인된 건 아니라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항인지질 자가항체가 코로나19 환자를 위중하게 만드는 혈전증의 원인인지는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제이슨 S. 나이트 류머티스학 부교수는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항인지질 자가항체 수치를 검사해, 혈전 생성과 점진적 호흡 부전(progressive respiratory failure)으로 진행할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면서 "궁극적으론 현재 항인지질 증후군에 쓰이는 치료제를 용도 변경해 코로나19 환자에게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장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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