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 또 속고'...속타는 개미 투자자

박해린 기자

입력 2022-03-08 19:12   수정 2022-03-08 19:12

    <앵커>
    올해 초 오스템임플란트를 시작으로 상장사의 횡령·배임 사건은 두 달 사이 4건이나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장사들의 횡령 범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요.
    `횡령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매년 연이어 터지고 있는 횡령·배임 사건에 대해 먼저 문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연초부터 기업 내부에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모두 4곳.
    1월 오스템임플란트와 세영디앤씨, 지난달 계양전기와 휴센텍 등 이들 기업의 횡령·배임액은 모두 2,850억원에 달합니다.
    코스피와 코스닥 등 증시 상장사들의 횡령·배임 문제는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19년 31건, 2020년 30건, 지난해 31건 등 최근 5년간 141건, 연평균 30건 안팎으로 횡령 배임 사태가 터졌습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최근 3년 동안 상장사의 횡령·배임 사건 92건 가운데 67건, 즉 70% 이상이 코스닥에서 발생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상장사들의 이러한 횡령이 ‘증시 퇴출’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최근 5년 사이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 또는 상장폐지 기로에 놓인 기업은 38곳.
    그 이유를 살펴보니 ‘횡령·배임 사실 확인’이 11곳으로 전체의 30%에 이르렀습니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상장사의 횡령 사건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날벼락을 맞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문형민입니다.
    <앵커>
    앞서 리포트를 통해 보신 것처럼 상장사들의 횡령, 배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슴 앓이 하고 계신 투자자분들 정말 많죠.
    박해린 증권부 기자와 이 문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 기자, 아직 3월밖에 안됐는데 벌써 4건의 횡령 사례가 발생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 문 기자 리포트에서도 보셨듯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등 올해만 해도 총 4곳의 상장사에서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슴 앓이를 하고 계신 소액주주만 약 5만8천여명이나 됩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 상장사들의 주가는 이렇게 멈춰 선 상태인데요.
    거래 정지된 주가를 기준으로 이들의 투자금은 1조3천억원에 달합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이런 상태니, 현재 `횡령`에 따른 거래 정지로 발이 묶인 소액주주는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황망해하고 계실 텐데요.
    오늘 심층 기획에서는 상장사들의 횡령이 왜 이렇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지, 그렇다면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건지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앵커>
    박 기자,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만한 게 바로 보상에 관한 문제일 것 같거든요.
    일단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장기간 돈이 묶일 수밖에 없고, 상장폐지까지 이어진다면 피해는 말할 것도 없잖아요.
    <기자>
    사실상 어렵습니다.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앵커>
    왜죠?
    상장폐지가 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만약 거래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기자>
    그렇죠.
    유명 피자 브랜드 `미스터피자`의 모기업인 MP그룹, 현재는 엠피대산으로 불리는 이 기업의 사례인데요.
    보시다시피 거래 재개 이후 주가가 빠르게 하락했죠. 대부분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 주가가 왜 하락하느냐, 정말 횡령으로 하락하는 게 맞느냐, 이걸 입증해 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주주들로선 당연한 거 아니냐, 이걸 입증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요.
    입증을 해야 합니다.
    만약 10만원짜리 주식이 5만원이 됐다, 정말 여기에 다른 여지가 없이 횡령만으로 5만원만큼의 주가가 하락했다, 이걸 증명해 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입니다.
    관련해서 오스템임플란트 주주들의 집단 소송을 맡은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엄태섭 / 오킴스 법무법인 변호사: (보상을 받은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 손해가 없어서 인정이 안된 게 아니라 손해와 회사 과실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대부분 실패하거든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해요. 살 때는 정상적으로 샀는데 사후 횡령이라는 범죄 행위로 인해서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주가 하락의 원인이 횡령만 있냐,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죠. 사실 입증하는 게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오스템임플란트와 같은 상황에선 점유율이 줄어들었다, 업황이 나빠져서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이런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겁니다.
    <앵커>
    주주들은 속이 정말 타들어가겠군요.
    애초에 이런 일들이 안 생기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기자>
    기업 입장에선 보통 개인의 일탈이다, 이렇게 치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의가 그친다면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바로 잡아야
    개인의 일탈이 실제 횡령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관련해서 전문가 인터뷰 차례로 들어보시죠.
    [김유경 / 삼정KPMG 내부회계관리제도 전문조직 부리더: "내가 재무적으로 곤란하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거리낄게 없어, 난 이정도 보상받을 수 있고 상사들도 다 이렇게 행동해"라고 하는 상황에서 내 손에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OTP와 공인인증서가 다 있다고 한다면 횡령이 현실화되는 거죠. 이 기회가 취약한 내부통제를 통해 발현되는 겁니다. 동기, 자기합리화, 기회라는 세가지 요소가 결합돼야 횡령이 현실화되기 때문에 이 고리를 끊어야합니다. 그리고 이 고리를 끊도록 제도화되고 법제화된 게 바로 내부회계관리제도입니다.]
    [박종성 / 숙명여대 교수: 가장 중요하는 건 경영자의 의지가 아닌가 싶어요. 횡령 등 부정행위가 발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 감독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지 않나 싶고요. 직원들의 윤리 교육 강화, 내부고발 활성화 등이 병행되면 횡령 사건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앵커>
    박 기자, 그런데 이미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잇따라 이런 횡령사건들이 발생하는 것만 봐도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기업들은 물적, 인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결국 형식적으로만 운영되고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삼정KPMG가 지난 2020년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의견 부적정을 받은 기업 153곳을 분석한 결과 이중 14.4%는 회계 인력 및 전문성 부족으로 나타났거든요.
    2018년 신외감법이 도입되고 2019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 기업부터 내부회계 감사를 받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1천억 이상 상장사, 내년부터는 전체 상장법인이 의무적으로 내부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데요.
    상장사들은, 특히 중소형 상장사들은 회계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들의 전문성도 부족해 인적, 물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코스닥협회 측은 "코스닥 상장기업 중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일수록 신외감법 시행에 따른 규제 비용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라며 "투자자 보호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규제 비용 경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앵커>
    규제를 더 강하게 하자니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오는 거군요.
    <기자>
    네, 그래서 금융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규제완화 차원에서 중소기업에겐 회계투명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최근 상장사들의 잇따른 신뢰도 저하 문제가 불거지자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앵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 같습니다.
    박 기자, 해외는 어떤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까?
    <기자>
    미국의 경우 우리보다 기업 내부의 긴장감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내부 고발제도도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적발 시 처벌 강도도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지금부터 문형민 기자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혹시 이 사람을 아십니까? 미국 횡령 사건 역사상 손에 꼽히는 인물인데요.
    Peregrine Financial Group의 대표이사였던 러셀 바센도르프(Russell Wasendorf)입니다.
    러셀이 회사로부터 횡령한 돈은 2억 1,500만 달러, 우리 돈 2,500억원이 넘습니다.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 직원의 횡령액인 2,215억원과 비슷한 규모죠.
    러셀은 징역 몇 년 형을 받았을까요? 2013년 시카고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50년을 구형받았습니다.
    해당 사건을 심판했던 시카고주는 500달러 이하의 횡령도 최대 1년이라는 형량을 부과합니다.
    만약 러셀처럼 100만 달러, 우리돈 12억원 이상을 횡령한다면 기본 권고형량은 최대 30년까지 늘어납니다.
    다만 러셀 사건처럼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등 사안이 심각해 가중처벌이 이뤄질 경우 형량의 상한선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다른 주도 처벌 형량은 비슷하게 높은 수준을 나타냈습니다.
    펜실베니아주의 경우 최대 기준액인 50만 달러 횡령 시, 기본 권고형량은 최대 20년이고요.
    뉴욕주는 100만 달러 이상을 횡령한다면 최대 24년, 텍사스주는 30만 달러 이상만 횡령해도 최대 99년을 구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미국과 비교하면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최대 기준액인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할 경우에도 권고형량은 5~8년입니다.
    범행수법이 불량해 형량이 가중된다고 해도 7~11년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내부회계관리제도의 문제점과 미비점을 찾아 ‘처벌’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미국은 기업에게 자율성을 부과하고 잘 운영했을 때 ‘보상’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은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가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충실한 설계와 운영을 지속적으로 입증할 경우 물적·인적 부담을 완화시켜줍니다.
    이에 더해 기업 스스로가 내부회계관리의 문제점을 자진신고할 경우, 금전적 제재를 경감 또는 면책해주는 인센티브도 마련해놨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횡령 범죄 처벌수준이 낮고 위반 시 처벌 위주의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운영하는 반면 미국은 횡령을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처벌수위가 높지만 잘 운영했을 경우 인센티브가 확실하다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앵커>
    처벌은 강력하고 보상은 확실하군요.
    규제를 강화하는 게 현실적인 해답이 아니라면 유인을 늘리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또 미국은 시총 1천억 미만의 상장사들에 대해서 외부감사인의 감사를 면제해 주고 공시 제도에 방점을 찍습니다.
    지금 우리 주주들은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형태잖아요.
    미국의 경우 경영자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스스로 평가하고 취약점이 있으면 자본시장에 공시하게 합니다.
    우리 회사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기엔 인적, 물적 한계가 있어 추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은 알고 계셔라, 이겁니다.
    이를 보고도 주주들이 이 회사의 사정을 받아 들이고 성장성에 베팅한다고 하면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겠죠.
    그리고 정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적어도 내가 이렇게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흡한 기업에 투자했었다는 리스크는 일부 책임질 수 있는 겁니다.
    이건 대표이사에게도 유인이 되는데요.
    이렇게 공시를 하고 난 뒤 문제가 생기면 대표이사의 책임을 경감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다보니 투명한 공시에 대한 니즈가 발현되는 겁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지금도 이미 규제 사항은 충분히 많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공시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김유경 / 삼정KPMG 내부회계관리제도 전문조직 부리더: 미국과 같이 내부감사비용을 부담시키지 않는 대신 경영자가 스스로 평가하고 "우리회사의 내부통제가 심각하니 투자자분들은 이점을 인지하고 투자하십쇼"라고 하면 투자자가 스스로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되죠. 감독당국은 경영자가 정직하게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시하지 않는 그 자체에 대해 감독하고 제재를 해야합니다. 중요한 취약점이 있으면 있다고 공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감독방향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앵커>
    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군요.
    박 기자, 오늘 주제 해시태그로 정리해주시죠.
    <기자>
    #속고 또 속고
    #속타는 개미
    #속쓰린 규제보단 당근을
    으로 하겠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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