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시장의 관심은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리느냐와 함께 작년 12월 Fed 의사록에서 검토됐던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이 어느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진행될 것인가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QT는 금융위기나 코로나 사태와 같은 비상국면에 추진됐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회수하는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인상→QT)의 마지막 단계다.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은 2013년부터 테이퍼링을 추진해 2014년 10월에 종료하고 1년 2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에 첫 금리인상 단행했다. 그 후 2년 가깝게 지난 2017년에 가서야 QT가 추진됐다.
이번에 출구전략 추진은 작년 9월 Fed 회의 직전에 테이퍼링을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테이퍼링 추진을 놓고 Fed 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11월 회의에서는 금리인상 문제가 언급됐고, 그 후 한 달도 안돼 열렸던 12월 회의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QT가 검토됐다.
금융위기와 달리 출구전략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거론되는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 추진됐던 무제한 통화공급 정책의 숙취(hangover) 현상인 인플레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립대의 이사벨라 웨버 교수는 코로나발 인플레는 50년 전에 사라졌던 ‘가격 상한제’를 다시 도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QT 추진 시기에 대해서는 갈수록 앞당겨져왔더. 매월 테이퍼링 규모를 300억 달러로 확대했던 작년 12월 Fed 회의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올해 안에 QT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QT 추진이 확인된 이후 올해 첫 회의에서는 테이퍼링 조기 종료와 함께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3월 Fed 회의 직후부터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러한 전망에 부합하듯 파월 의장은 "5월 열리는 FOMC 회의에서 대차대조표 축소 시작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QT 추진 시기가 결정되면 그 규모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는 더 중요한 과제다. 파월 의장은 "프레임워크는 매우 비슷하겠지만 지난번보다 더 빠르게 시작되고 진행될 것"이라는 힌트를 남겼다. QT 규모는 Fed의 보유자산 적정규모에 달려있다. 2017년 QT 추진사례를 보면 금융위기 이후 Fed의 보유자산이 1조 달러에서 4조 5천억 달러로 늘었다. 보유자산 적정규모를 놓고 투자은행(IB)과 논쟁 속에 밴 버냉키 전Fed 의장의 주장대로 3조 8천억 달러로 축소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Fed의 보유자산은 4조 달러에서 9조 달러로 급증했다. Fed가 보유자산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가져간다면 5조 달러를 줄여야 한다. 시중 유동성 환수 효과가 금리인상보다 2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하면 벌써부터 월가에서는 ‘5조 달러 QT 재앙에 증시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QT 추진으로 국채금리가 급등할 경우 ’빚의 복수‘가 본격화되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작년 12월 중순까지 연방부채상한 임시 유예조치로 연명했던 수준이다. 작년말 기준으로 가계부채도 3천 500억 달러가 넘어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QT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경기는 ‘부(富)의 효과’로 지탱하고 있어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받아왔다. 올해 출구전략 추진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추진될 경우 주가 하락 등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래리 서머스 하버드 교수는 ‘구조적 장기침체론’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출구전략을 추진해 거품 제거, 지속적인 성장기반 확보와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금융시장과 경기를 망쳤던 1930년대 Fed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 2006년 전후 일본은행(BOJ)의 ’후쿠이 불명예(Fukui’ disgrace)가 대표적인 예다. 출구전략 추진과정에서 QT를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첫째, 그런 만큼 대부분 국내 증권사가 ‘QT는 두렵지 않다’는 시각이 있으나 금리인상과 QT는 ‘통화정책의 대전환’인 만큼 그 자체가 의미가 크고 경계해야 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도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되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을 토대로 주식 매입을 권유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실을 가져다줬다.
둘째, 정책금리 인상과 달리 QT는 시장금리를 끌어 올린다. 2015년 12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시장금리는 떨어지는(미국 10년물 국채금리 2.7%대→2.1%대)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재현됐다. 하지만 QT를 추진하면 시장에 채권공급이 늘어나 채권가격은 떨어지고 반비례 관계에 있는 시장금리는 반드시 올라간다.
셋째, 세계 총부채가 이미 위험수위가 넘은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마이클 루이스가 경고한 ‘빚의 복수’가 시작된다. QT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빚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경제주체가 빚의 무서움을 모르게 하는 ‘부채경감 환상(debt deflation syndrome)’에 빠지게 해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을 모색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역풍이다.
넷째, QT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자산시장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시적으로 써야 할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과정에서 모든 자산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증시에서는 ‘거품 논쟁’이 제기된 지 오래됐고, 채권시장에서도 ‘순간 폭락(flash crash)’ 우려가 확산돼 왔다. IMF는 ‘세계주택시장의 대폭락(great housing crash)’ 가능성을 일찍부터 경고했다.
다섯째, Fed에 이어 다른 중앙은행도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자국의 금융시장과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의 동조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Fed의 QT 추진시기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인상에 이어 QT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늦으면 일본은행이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고집하다가 엔화 가치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여섯째, 우리가 속한 신흥국도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신흥국에 유입된 자금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한마디로 환차익과 금리차를 겨냥해 들어온다는 의미다. 3월 Fed의 금리인상을 필두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이 순차적으로 금리를 올려 나갈 경우 ‘유입(포지티브 캐리 트레이드)’보다 ‘유출(네거티브 캐리 트레이드)’될 여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리스크 관리가 생명이다. 꼬리 위험(tail risk?가능성이 적으나 발생하면 큰 파장을 몰고 오는 위험)까지 빈번하게 발생하는 초불확실성 시대에 발생 가능성이 최소 50% 이상 되는 리스크는 투자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해 줘야 한다. 리스크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QT가 두렵지 않다‘고 결론부터 내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낙관적인 근거만 제시하는 보고서는 증권사의 본업을 외면하는 행위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 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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