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액 자산가 모셔라"...주목받는 원조PB [심층분석]

김종학 기자

입력 2022-04-26 19:44   수정 2022-04-26 20:05

    '부자 만드는 연금술사'…정상급 PB 120명 스카우트 전쟁
    <앵커>
    현금 10억 원 이상인 부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들을 두고 최근 대규모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부터 소매금융 철수를 시작한 한국씨티은행 소속 프라이빗뱅커들인데, 지점당 많게는 수 조원씩 운용하던 최정상급 PB들이 포함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증권부 김종학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이직 사례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일반 은행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던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뒤로 지금까지 약 120여명의 프라이빗뱅커가 경쟁 금융사로 옮겼습니다.

    씨티은행에선 자산관리를 담당하던 인력을 Relationship Manager, RM으로 부르는데, 사업철수 전까지 5곳의 WM에서 일하던 RM이 대거 이직한 겁니다.

    120여명의 RM 중에 같은 외국계회사인 SC제일은행으로 27명으로 옮겼고, 우리은행은 22명을 팀 단위로 영입해 역삼동 특화지점(TCE시그니처센터)에 한꺼번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증권사 중엔 신한금융투자 역시 이들을 대거 흡수해 모두 33명의 RM을 옮겨왔는데 각 센터 대표급 인력이 이동했습니다.

    이곳의 경우 씨티은행에서 한 손에 꼽히던 인력, 특히 우리나라 1호 PB로 불리던 염정주 센터장을 비롯해 1명당 수천억 원씩 맡고 있던 정상급 인력을 모두 스카우트했습니다.

    씨티은행의 우량고객과 함께 수 천억에서 조 단위 자금 이동의 열쇠를 쥔 그룹이 바로 이들 프라이빗뱅커인데, VIP 고객들과 최상위 자산관리 노하우를 한꺼번에 확보하는 셈이어서 금융권의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앵커>
    금융사들마다 이러한 프라이빗뱅커들이 있을텐데, 씨티은행 출신들만 주목할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
    한국씨티은행은 PB원조, PB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있는 곳입니다.

    1987년 한국에서 최초로 자산관리를 선보였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금융시장이 커감에 따라 자산관리에 필요한 국제공인 재무설계사 자격증, 투자상품 판매 자격증 등 내부적인 교육을 체계화해온 곳입니다.

    국내 삼성증권, 미래에셋 등 대형 증권사의 경우 특정 엘리트에 의존하는 편이라고 하면 씨티은행의 경우 팀 단위로 자산관리를 시스템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경쟁 금융회사들이 탐내고 영입하고 싶어했던 겁니다.

    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하기 전까지 서울센터, 광화문, 청담 등 5곳의 WM센터를 운영했는데, 지점 단위로 많게는 3조원 이상의 우량 고객 자금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나 전문성에서 두각을 보여왔습니다.

    이렇게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한 건 초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이 보다 까다로워지고 트렌드에 민감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자산가들의 연령대가 60대 이하로 젊어지는 추세인데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해외 유망 비상장 기업 등 비롯한 최근 투자트렌드를 더 알고자 하는 환경에서 고급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됩니다.

    운용 성과 뿐만 아니라 전문성이나 서비스에 따라 이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리서치, 체계화된 서비스, 경험을 갖춘 PB들을 스카우트하려는 비용도 올라가는 겁니다.

    씨티은행의 스타PB들이 증권업계로 대거 이동하면서 이들이 관리하던 수천억 원의 자산을 투자할 분야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는데요.

    신한금융투자로 옮긴 신은재 광화문센터 PB, 정미애 청담금융센터 PB의 인터뷰를 지수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씨티은행 `톱 3` PB로 선정됐던 신은재 이사는 신한금융투자로 이직한 후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다양해졌다고 말합니다.

    은행PB 평가기준에 따라 펀드를 주로 판매했지만 이제는 주식과 ETF등 다양한 증권 상품을 제안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인터뷰] 신은재 신한금투광화문금융센터 이사
    "은행상품은 기본적으로 예금이 있고, 투자성 상품, 보험 상품이 있습니다. 보통 저희같은 PB들은 주력으로 판매를 하는게 펀드 같은 투자상품을 제안을 많이 드립니다. (증권은) 기본적으로 씨티에서 판매한 펀드는 거의 다 론칭돼 있고, 거기에 주식, ETF, 랩상품까지 제안을 드릴 수 있어서..."

    지난 1월 증권사로 옮겨오면서 가장 재미를 봤던 투자 상품은 바로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입니다.

    씨티에서 22년을 근무한 배테랑PB 정미애 부지점장도 공모주 청약에 고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정미애 신한금투 청담금융센터 부지점장
    "은행권의 업무라고 하면 실질적으로 정기예금이잖아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이 첫 미션(이었어요.) IPO 청약하는 과정중에 (고객들이) 이런 자산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셨고, 저는 상장 첫날 시초가에 매도를 했던 터라 그런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공모가 30만원이었던 LG엔솔은 상장 첫날 59만8천원까지 상승했지만 현재 43만원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10년 가까이 보험에 자산을 묻어둬야했던 은행 자산가들은 한달새 두 배가 넘는 수익을 실현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겁니다.

    특히 `펀드담보대출`같은 증권업계 제도가 도움이 됐습니다.

    [인터뷰] 신은재 신한금투광화문금융센터 이사
    "(여기서는) 펀드담보대출이 자유로워요. (은행에서는) 펀담대가 안돼니까 자금이 필요하면 환매해서 쓰는 방법밖에 없어요. 공모주 할 때는 자산이 긴시간 필요한게 아니잖아요. 여기서는 10억 정도 예치가 돼있으면 그중에 일부는 잠깐 공모주할 때 활용하시고, 또 다시 갚고 하는 것을 말씀드렸더니 그것도 선호하시고..."

    씨티가 외국계 은행이었던 만큼 자산도 해외비중이 높았다면 이제 국내 펀드의 비중도 높여갈 계획입니다.

    [인터뷰] 신은재 신한금투광화문금융센터 이사
    "씨티에서는 국내 펀드는 많이 안했어요. 미국이나 유럽쪽 펀드를 많이 판매 했었고요. 여기 와서 (리서치가 잘 돼 있어서) 국내 펀드 관심 커졌어요. 지수도 2700이면 괜찮은 상황이고, 비과세 과표가 많이 안잡히기 때문에 중소형 가치주 펀드로.."

    앞으로 자산가의 포트폴리오에 `비상장 주식`도 일부 편입시킬 예정입니다.

    [인터뷰] 정미애 신한금투 청담금융센터 부지점장
    "5%내외에서 대체수단으로 비상장주도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다변화 측면에서 프리IPO하기까지 유니콘을 발굴하는 신탁조합 상품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마켓컬리나 당근마켓이 포진된 것들에 미리 투자한다면 향후에 성과가 날 수 있잖아요."

    자산관리를 확대하고 있는 증권 업계에서는 이번 씨티은행PB의 이동으로 자산가의 자금이 은행권에서 증권업계로 대거 이동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스카우트 경쟁이나 인터뷰 내용만 봐도 금융회사들이 일반 소비자보다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실적에 실제 보탬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기자>
    기존 금융회사들은 아무래도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핀테크 기업의 성장으로 잠재적인 고객 기반을 위협받는 게 현실입니다.

    또 증권사만 해도 거래량이 줄면 실적이 둔화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관리라는 전통 금융사만의 강점을 키워 소비자들을 붙잡아야 중장기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제 국내 4대 은행 기준으로 프라이빗뱅커에 고객이 맡긴 돈이 5년 만에 32% 늘어 작년에 1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자산관리 시장이 크는 이유는 지난해까지 이어진 주식 활황으로 투자를 맡길 현금 10억 이상의 부자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KB금융 부자보고서 기준으로 2020년 기준 39만 3천명, 최근 5년 사이에 10만 명 이상 늘었습니다.

    초고액 자산가 운용 자금만 수 조원이 넘다보니 지점에 따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상품군의 투자도 가능합니다.

    가령 당근마켓이나 컬리 등 기업공개를 앞둔 비상장기업에 묶어서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투자하 내거나, 지난해 케이뱅크 유상증자 처럼 굵직한 투자에 참여를 유도하는 등 수익을 다변화할 수 있는 겁니다.

    <앵커>
    자산가들의 자금을 비상장주식이나 랩 등으로 더 다양하게 투자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주목할 변화가 있을까요?

    <기자>
    시장 변동에 대한 프라이빗뱅커들의 조언 중에 일반 투자자들도 참고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고액자산가들의 자금을 관리하던 프라이빗뱅커들도 공통적으로 직접적인 주식투자, 그리고 최근 평가손실이 커진 채권 비중은 줄이는 방향을 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관련 펀드들도 당장은 자금을 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대신 워낙 변동성이 큰 시기이기 때문에 투자 기간을 길게 본다면 개별 기업보다는 분산효과가 큰 ETF, 그리고 금리인상이 당분간 이어지더라도 배당주와 리츠 위주로 배분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합니다.

    <앵커>
    증권부 김종학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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