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13년 만에 재개되는 우리 원전 수출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우리 업체들에게 일감을 주는 주 사업자가 러시아 기업이기 때문인데, 현재 상황과 앞으로 전망이 어떤지 취재기자와 자세히 짚어 봅니다.
산업부 방서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방 기자, 먼저 우리 기업들의 속을 썩이고 있는 원전 사업.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인지부터 설명해주시죠.
<기자>
이집트 엘다바에 원전 4기를 짓는 사업입니다.
이집트 원자력청(NPPA)에서 발주했고요. 사업 규모만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조원에 달합니다.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의 자회사, JSC ASE가 해당 사업을 턴키 계약(일괄 수주)으로 따냈는데요.
이 중 주 시설인 원자로 건물은 러시아가 짓고, 터빈을 비롯한 나머지 2차 부속건물 건설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단독 계약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따라서 한수원의 계약 상대방은 이집트 원자력청이 아니라 러시아 ASE입니다. 쉽게 말해 ASE의 하청인 거죠.
그렇다 하더라도 2차 계통 건설 역시 전체 사업의 최대 10%를 차지하는 만큼 사업 규모만 최소 수조원에 이를 전망이고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로선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3년 만에 재개되는 원전 수출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습니다.
<앵커>
한수원이 단독 계약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그 이후 진전이 없었다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엘다바 원전 착공이 오는 7월로 예정된 만큼 한수원은 ASE와 가격과 계약 주요 조건에 대해 협상을 마무리하고 지난 4월 말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경제TV 취재 결과 아직도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고요. 계약과 직결된 양사 간 협상도 최근 취소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수원은 당초 어제(5월29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ASE와 구매·시공 분야 실무협의를 진행할 계획이었는데요.
ASE가 회사 내부 사정을 이유로 협의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먼저 해 온 겁니다.
원전업계는 착공을 한달 앞둔 시점에서 중요한 협의를 취소해버린 ASE측 행보를 두고 계약 무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지만 어쨌든 원전은 이집트에 지어지는 거잖아요.
아무리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한들 사업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이집트에 있을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지체된 건가요?
<기자>
일단 한수원 측에서는 조단위 해외 사업 특성상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국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시인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엘다바 원전은 사업 방식이 좀 독특합니다.
발주는 이집트 원자력청이 했지만 정작 사업비의 약 85%를 러시아 정부 차관으로 씁니다.
원전이 완공되고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차관을 갚는 방식인 거죠.
문제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러 제재 강도를 높이면서 러시아 정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차관 지급부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한수원은 사업에 참여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에 대한 금수조치를 발표한데 이어 원전 원료인 우라늄도 수입 금지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은 서방 제재에 동참하는 비우호국가죠. 협상이 빨리 진행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 중론입니다.
<앵커>
어쨌든 러시아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압도적인 원전 강국입니다.
이번 사업에서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 정부 들어 다시 발동이 걸린 K-원전 수출 움직임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요?
<기자>
한수원은 최대한 빨리 협의를 진행해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입니다.
7월은 러시아가 진행하는 1차 착공이고, 한수원이 맡은 2차 착공은 내년이니까 계약 일정이 조금 밀려도 상관 없다는 거죠.
그리고 ASE측에서 한수원과 계약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없기 때문에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엘다바 원전이 사막에 짓는 원전이거든요. 사막 원전은 지난 2009년 한수원이 수출하고 지난해 상업 운전을 개시한 바라카 원전 뿐입니다.
한수원이 ASE의 단독 계약협상대상자가 된 것도 러시아 쪽에서 이런 사막 원전 건설 경험을 높이 평가해 먼저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정이 지체된 것도 우리 업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 만큼 협상을 적극적으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고요.
만에 하나 계약이 무산된다면 한수원 뿐 아니라 시공과 기자재 공급에 참여할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다른 국내업체들도 고배를 마시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원전업계는 13년 만의 원전 수출과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정부의 외교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13년 만의 원전 수출, 이대로 멈출 순 없다
#기술은 최고 #상황이 안 좋을 뿐 #정부가 나설 때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