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증권사들의 하루짜리 단기채 발행액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 시장 경색으로 벼랑 끝에 몰린 증권사들이 선택한 임시방편인데요.
증권부 박찬휘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 기자, 지금 증권사들 상황이 어떤가요?
<기자>
그야말로 `위기의 증권사`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증권사들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데요.
증권사들은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높은 금리도 불사한다는 입장입니다.
증권사들은 금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지만 CP(기업어음)나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발행해 `자금 돌려막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메리츠증권의 단기사채 발행액은 지난달 2,500억 원에서 이달 5,5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다른 일부 증권사들의 단기사채 발행액 역시 최근 3개월간 급증했습니다.
채권시장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신규채권을 발행해 기존채권을 상환하는 `차환`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차환에 실패하면 증권사들은 발행 물량을 자체 매입해야 됩니다.
정부가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달 `50조원+α` 규모의 시장 안정책까지 내놨는데요.
그러나 이같은 자금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CP 금리가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우려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CP 금리 상승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기관들의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앵커>
시중금리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현재 시중 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입니다.
CP를 기존 보다 금리를 두배 높여 발행해도 팔리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단기자금시장은 쉽게 안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기금리가 연일 고공행진인데, 금리는 당분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 홍헌표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홍헌표 기자>
단기자금시장 금리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16일 기준 91일물 CP금리는 5.24%로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3%대 중반이었던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세입니다.
특히 CD금리와의 차이가 130bp나 벌어졌습니다.
CP와 CD금리의 차이는 단기자금조달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차이가 벌어질수록 기업의 신용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코로나19 펜데믹 초반에 금리차이가 약 100bp였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회사채 시장 미매각율은 무려 33%를 기록했고, 비우량채 뿐만 아니라 우량채권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중소형 증권사들은 하루짜리 전자단기사채를 6%대 금리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렵지만 문제는 시장금리가 내년 초까지는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자금시장을 둘러싼 위기감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 : 미국의 기준금리가 내년 5% 넘을 것입니다. 물가상승률이 2%가 될 때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년 정도는 굉장히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기업들이 체감할만한 규모에는 못 미치는 만큼 한국은행이 개입해 지원금액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현재 채권시장에 대해 증권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기자>
최근 증권사들은 잇따라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리고 있습니다.
단기차입금은 보통 기업들이 급하게 자금을 마련할 때 활용되는데요.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입니다.
한화투자증권은 자금 조달을 위해 CP 발행한도를 5,000억 원 늘렸고, 같은 날 유진투자증권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한도를 3,000억 원 늘렸습니다.
이 밖에 현대차증권과 BNK투자증권도 3,000억 원, 800억 원씩 증액했습니다.
다만 증권사들은 실제로 차입한 것이 아니라 한도만 늘린 선제적인 조치라고 해명하며 유동성 위기라고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채권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기 전부터 이미 차입 한도를 늘리는 움직임이 나왔다는 건데요.
실제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7월 한화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은 차입한도 한 차례 증액한 바 있습니다.
6월에도 키움증권을 비롯해 일부 증권사들이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단기차입금 한도를 대폭 늘렸습니다.
그러나 현재 채권시장 상황만 보면 이것이 단순하게 선제적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장 상황에 대한 전문가 분석 들어보겠습니다.
[이완수 / 그레너리파트너스 대표 : 지난번 정부에서 50조 원 투입하고 나서도 사실 유동성 문제가 그렇게 크게 해결되는 모습은 아닙니다. 국채시장이야 투자 수요가 항상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상대적으로 회사채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 쪽이 아직도 폭탄으로 남아있습니다. 리파이낸싱을 할때 금리가 전에는 6% 내외였는데 지금은 12%까지 올라가있는 상태입니다. 그만큼 단기채들이 유통이 안된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전채라든지 전단채들은 거의 거래가 안될 정도로 심화돼 있습니다.]
채권시장이 안정되려면 시장금리가 안정화되고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완화돼야 한다며, 시기상으로는 내년 하반기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대형 증권사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기자>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발행어음의 규모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인데요.
대형 증권사 중에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 4곳입니다.
이들의 최근 발행어음 잔액은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요.
상반기 자기자본 기준으로 미래에셋증권은 20조 원,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14조 원, KB증권은 10조 원 가량 발행이 가능합니다.
현재 출시되는 발행어음의 상품 금리는 정기예금 금리와 비슷한 수준인 연 5%인데요.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증권사들이 높은 금리로 발행어음을 내는 것은 수익이 아니라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이 밖에 보유 자산을 팔고 구조조정도 단행하고 있다고요.
<기자>
증권사 취재 결과, 중소형 증권사들은 CP와 전단채 발행으로 버티는 한편, 비용을 줄이고 돈이 될 만한 자산을 처분하면서 자금 확보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들이 CP나 전단채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거래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부동산 자산을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아 ETF나 펀드 상품 등 보유자산을 다 갖다 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이들이 팔아치운 주식과 채권이 꾸준히 시장에 공급되면서 가격반등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금 시장 경색에 실적까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리서치와 IB(기업금융) 등 인력을 감축하는 곳도 발생했습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와 밀접하게 연관된 채권과 부동산PF팀을 비롯해 IB 파트가 유력한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힙니다.
이달 1일 케이프투자증권은 법인 영업부와 리서치 사업부를 폐지한다고 밝혔고요.
9일에는 다올투자증권이 채권팀 6명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앵커>
정부가 거의 200조원 가까이 지금 기업들 자금난 해소에 투입하겠다 했는데,
증권사들 체감사정은 전혀 안전하지가 않은 것 같거든요. 어째서입니까?
<기자>
정부는 증권사들의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대형 증권사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제2 채안펀드 규모를 확대하는 등 본격적으로 PF ABCP 매입 지원에 나선건데요.
4,500억 원으로 가동될 예정이었던 제2 채안펀드는 산업은행과 증권금융의 매입 자금이 추가되면서 1조8천억 원으로 대폭 확대됐습니다.
중소형 증권사 유동성 지원을 위한 PF ABCP 매입은 이달 2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다만 중소형사들은 기금 조성에 대해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기금을 지원받는다는 것이 자칫 증권사 자금 현황이 부실하다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실효성 측면에서도 만기 상환 때까지 지켜봐야하기 때문에 즉각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앵커>
증권부 박찬휘 기자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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