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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도 예금처럼 저축..."한달살기, 더이상 로망이 아니예요"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기자

입력 2022-11-18 17:27   수정 2022-11-18 18:32



장기간 낯선 곳에서 머물며 여행하는 `한달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앞으론 이 `한달살기`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지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정책이 밑그림을 마련하고 있는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최근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 최대 연장 12시간)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기본방향을 발표했는데요.

기본방향 중에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이 포함됐는데. 이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장기휴가 쓰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는 말 그대로,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시간으로 저축했다가 수당 대신 휴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추가 근로 시간을 은행 예금이나 마일리지 처럼 차곡차곡 모아놨다가 근로자가 원할 때 몰아서 장기 휴가로 쓸 수 있다는 거죠.

연구회는 `주52시간제`의 틀 안에서 사업장에 맞는 탄력적 근로가 가능하도록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1주에서 월 단위 이상(최대 1년단위)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할 계획인데요.

이렇게 되면 근로자가 불가피하게 특정 시기에 일을 몰아서 하게 되는 만큼, 추가 근로에 대한 보상을 임금이 아닌 휴식으로 확실히 보장해 줘 노동계 등에서 우려하는 `장시간 근로`의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것이 연구회의 구상입니다.

● "수당이 아닌 휴식으로"…연차 보상의 개념을 바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눈치를 보느라 연차와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화 때문에 쓰지 않은 연차에 대해 돈으로 돌려받거나 더 일한 데 대한 추가 수당을 받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인데요.

반면 외국에선 휴식과 휴가를 임금으로 여기는 관점이 아닌, 건강한 노동력의 재생산 수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근로시간 계좌제`가 활성화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연장근로시간을 자신의 계좌에 저축하고 휴가나 휴식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꺼내 쓰는 것으로, 우리가 도입하려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와 비슷한 개념인데요, 미리 휴가를 쓰고 나중에 초과근무를 해도 된다고 합니다. 단체협약에서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근로자는 노동시간을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2018년 기준 500인 이상 사업장 85%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고, 형태도 한층 진화된 모습입니다,

근로시간에 적립된 시간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녹색, 황색, 적색 단계로 경고해 근로자가 수시로 관리할 수 있는 `신호등 계좌`도 있고,

정산 기간이 월 또는 년 단위로 설정된 단기근로시간 계좌 뿐만 아니라, 정산기간이 1년 이상으로 육아, 간병, 장기학업, 유급 조기퇴직, 안식년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장기근로시간계좌의 활용도도 높다고 합니다.(250인 이상 사업장 중 장기근로시간계좌제를 활용하는 사업장 비중은 2016년 기준 약 81%.)



● 근로자 10명 중 4명 "취미·공부·건강이 더 중요…덜 일하고 싶어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는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 기본방향을 내놓으며 `근로시간 근로자 인식조사`(전국 19세∼70세 근로자 중 3,026명 표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일하는 시간이 적합하다`는 응답은 38.1%에 불과했고, `취미·공부·건강 등의 이유로 덜 일하고 싶다`는 응답도 38.9%에 달했습니다.

또 휴가사용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일정기간 연속해 장기간 휴가 보장(40.7%), `연장근로 등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선택권 부여(28.2%) 등을 꼽은 응답자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MZ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이 늘면서 이젠 휴가를 저축해 단순히 하루, 이틀 휴식이 아닌 장기휴가를 통해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을 위한 재충전·재투자의 시간으로 활용하려는 요구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에 따라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통해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도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자료: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보상휴가제도`, `근로시간저축휴가제도` 아셨나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사실 새로운 제도는 아닙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미 근무한 만큼 휴가로 저축하는 `근로시간저축휴가제`로 확대 개편한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 개정안이 제출된 건 2004년 7월에 도입된 보상휴가제도의 활용이 저조하다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근로시간저축휴가제가 휴가 적립대상을 기존 연장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더해 미사용 연차휴가까지 포함시키고, 휴가시기의 선택권이 원칙적으로 근로자에게 줘 기존 보상휴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는 겁니다.

하지만 보상휴가제도조차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제도였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저축 휴가제 개념은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도입돼 활용되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 등에선 업무량 과다와 대체인력 부족으로 법으로 보장된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죠.

이 때문에 근로시간 계좌제가 도입되더라도 제도의 취지와 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근로자들의 휴가가 활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또 노동계 등 일각에선 연차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작업물량이 적을 때나 회사가 경영상 어려울 때 비자발적인 휴가를 강요받을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하려면 법을 바꿔야 하기에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직장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근로자의 연차사용 청구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측의 휴가시기 변경요구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필요한 조치로 꼽힙니다.

이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제도 도입의 활성화를 위해 연장근로를 휴가로 저축할 때 법정 가산수당 기준보다 높은 할증을 적용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적립한 시간을 다양한 방식의 휴가로 사용하고 휴가 사용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장기 휴가`(소위 안식월 등), `단체 휴가`(징검다리 연휴, 정기·순환 휴가 사용), 필요에 따라 단기로 쓸 수 있는 `시간 단위 연차 휴가` (병원 진료, 자녀 등·하원 등) 등 다양한 휴가 활용의 확산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연구회의 한 연구위원은 "사업주 처벌과 인센티브 등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법적인 보완방안까지 고심 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브리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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