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한 보호무역 전쟁에 유럽까지 참전하면서, 수출이 먹거리인 우리나라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산업부 김민수 기자 나왔습니다. 먼저 탄소국경조정제도, CBAM이 무엇인지부터 자세히 알아보죠.
<기자> 탄소국경조정제도, 영어로 약자로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입니다. 이는 EU가 자체적으로 멋지게 붙인 이름이구요. 쉽게 말해 관세인 탄소국경세를 말합니다.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EU 국가들이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나라의 제품을 수입할 때, 그 제조 과정에서 생긴 탄소 배출량과 EU의 규제 기준과의 차이만큼 부과하는 일종의 무역 관세죠.
특히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직접 탄소 배출량에 더해 간접 탄소 배출량까지 따지기로 해 예상보다 한층 강력해졌는데요. 그러니까 EU에 수출하는 역외국가들은 비용이 한층 늘어난 셈이죠.
일단 내년 10월부터 CBAM을 시범운영을 하면서 준비 기간을 갖고 이르면 2026년 본격 시행할 전망입니다. 준비기간에는 별도의 관세는 부과되지 않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들이 EU에 탄소국경세를 내야하는 겁니까?
<기자> 먼저 가장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수소 등 일단 6개 품목이 규제 대상으로 확정됐습니다.
수소는 초안에 빠져 있다가 협의 과정에서 추가됐습니다. 앞으로 볼트 같은 일부 부품 등으로 적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對) EU 수출규모로 볼 때,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철강입니다.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이죠.
다행히 경쟁국인 일본이나 러시아보다 우리 철강제품들의 탄소배출 경쟁력이 나은 편이긴 하지만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내년 10월부터는 우선 보고만 하면 되지만, CBAM이 본격 시행되면 생산비 증가와 그로 인한 부수적 행정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상 무역장벽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기자> 취지를 떠나 사실상 보호무역을 위한 관세기 때문에 WTO 규정에 위반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럼에도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도입하는 것은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미 강도 높은 탄소배출 규제를 견디고 있는 EU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회복입니다. 상대적으로 환경 규제비용이 적은 EU 밖의 기업들은 그만큼 생산단가 낮거든요. 형평성을 맞추자는 거죠.
두번째는 EU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낮은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요. 이를 `탄소 누출`이라고 합니다. 비판이 나오는 것인 두 가지 이유 모두 보호무역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특히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은 지구상에서 가장 환경 규제가 강한 EU 국가의 기업들은 이미 수준 높은 친환경 생산능력 갖췄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점을 지닌 채로 값싼 노동력이나 기술 등을 토대로 생산 단가를 낮춰 승부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일종의 기술장벽을 세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앵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이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IRA와 비슷한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면서요? 이 부분도 걱정입니다.
<기자> 사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보다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EU가 주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이른바 `핵심원자재법(CRMA : Critical Raw Materials Act)`인데요.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1분기 공개될 예정인데, 희토류·리튬 등 전략적 핵심 원자재를 선정하고 EU 내에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길 전망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비슷한 취지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유럽판 IRA로 불립니다. 사실상 미국의 보호무역에 대응하겠다는 건데요.
그동안 EU는 미국 IRA가 WTO 규정을 위반하고 있고, 무엇보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에 미국 공장 설립을 강제해서 유럽 제조업 경쟁력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거든요.
`핵심원자재법`으로 인해 이미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한 국내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이 난감한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EU 소속 국가 정상들이 국내 기업 총수들을 만날 때마다 자국 투자를 요청하는 것도 이같은 흐름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앵커> 미국에 이어 EU까지 무역장벽을 치고 있는데,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까?
<기자> 미국 IRA에 한 번 놀랐던 경험 덕분인지, 우리 정부도 나름대로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EU 당국자를 만나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면제를 요구했는데요. 우리나라도 EU와 유사한 형태로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를 고려해달라는 것이죠.
또 어제(13일) 범정부 대책 회의를 열고 3~4년으로 예상되는 준비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산업부가 중심이 돼 EU와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녹록치 않아보입니다.
<앵커> 하지만 큰 흐름이 보호무역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기자> 지금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지난 9일 WTO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부과했던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규정 위반으로 판정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안보 문제`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반박했습니다. 안보 문제는 WTO 분쟁 기구에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중국의 불공정 무역이나 바로 잡으라며 WTO를 개혁해야 한다고 딴지를 걸었습니다. 이를 두고 WTO 체제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미국은 `안보`를 이유로, 이제 EU는 `기후변화`를 명분삼아 무역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판도라의 상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EU까지 허용치를 넘어선 보호무역에 나설 경우,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란 겁니다.
이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EU 집행위 논의 과정에서 한층 강력해졌거든요. 미국이 불을 지른 이상, EU도 한층 과격해질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내년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엄청난 충격 후에 오는 글로벌 무역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에게도 평소와는 다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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