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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밥먹듯 했는데 공짜?...불공정 끝판왕 '포괄임금제'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기자

입력 2022-12-16 18:22  



얼마 전 전문가 자문그룹 미래노동시장연구회(미래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노동개혁 과제에 대한 권고안을 내놨는데요. 주 52시간제와 임금체계 개편에 특히 관심이 쏠렸었죠.

그런데 미래연이 권고문에 담은 노동개혁 세부 과제는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과 주휴수당 폐지, 정년 연장 등 노동시장의 해묵은 쟁점들이 대부분 거론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몇 줄 언급됐을 뿐이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였습니다.

그동안 `공짜 노동`을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근로 현장에서 만연해 왔지만만, 제도 개선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얼마 일하든 정해진 돈만 받는다"…판례가 낳은 `포괄임금제`

포괄임금제란 쉽게 말해,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해 매월 일정액을 연봉에 미리 포함시켜 얼마나 오래 일하든, 미리 정해진 만큼의 수당만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근로기준법 상 제도가 아닌, 판례에 의해 형성된 임금지급 계약 방식인데요.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자가 실제 근로한 시간에 따라 시간외근로 등에 상응하는 법정수당을 산정·지급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례에선 예외적으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당사자간 합의가 있는 경우`,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을 경우` 등의 전제조건을 달아 임금의 포괄적 산정을 인정해왔죠.

포괄임금제 이외에도 현장에서는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임금계산이 쉽고, 사업주·근로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고정OT(Ovetime) 계약`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괄임금과 고정OT 계약의 경우 법적 제도는 아니지만, 2010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의 강행성과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약정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 `공짜노동` 만연…장시간 근로 부추기고 임금체불까지

# 신입사원 A씨는 올해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는 조건으로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매일 반 10시까지 일해 한달에 시간외근무 시간은 24시간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추가 수당을 받지는 못합니다. 사측은 기본급·연장근로수당·교통비·식대·상여금이 모두 연봉에 포함돼 있다는 연봉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만 할 뿐입니다.

# 직장인 B씨는 2주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데 수당은 받지 못합니다. 포괄연봉제인 탓에 연장근로에 대해 수당을 받거나 연차로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고민에 빠진 B씨는 휴일근무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달 공개한 포괄임금제 피해 사례들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포괄임금제에서도 약속한 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선 분명히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미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라면 이 제도를 따라야 할 수 밖에 없기에, 포괄임금·고정OT약정이 오용되거나 남용돼 일한 만큼 임금을 못 받는 ‘공짜 노동`과 이로 인한 `장시간 노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선 `근로시간 관리` 철저히…공짜야근 근절 `지름길`

그렇다면, 이러한 공짜야근을 뿌리뽑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래연은 "실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정확한 기록·관리와 임금 산정 명확화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또 포괄임금 오남용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시적인 근로감독을 실시할 필요성도 강조했고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투명하고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관리`인데요. 근로시간을 제대로 관리해야 그에 따른 임금도 제대로 지급할 수 있겠죠.

선진국에선 철저한 근로시간 관리체계를 구축해 `근로시간 유연화`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국가별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독일에선 근로시간법상 사용자의 `근로시간 기록의무`를 명시하고 평일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기록해 2년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반하면 최대 3만 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근로시간법에 근로시간에 대한 기록을 포함해 사용자가 기록·보관·제출해야 하는 목록과 자료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근로시간의 시작과 종료 △근로시간 정산을 위한 단위기간의 시작과 길이(1일 근로시간, 1주 근로시간, 1일 휴식시간, 1주 휴식시간) 등이 기록돼야 합니다. 이때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기록을 위임하는 경우, 사용자는 근로시간 기록이 적절히 이행되도록 지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고요.

스위스의 경우엔 노동공법 시행령에 사용자가 △근로시간 길이(출·퇴근시간) △모든 보상시간과 연장근로 △1일·1주 근로시간, △휴게의 길이와 배치를 기록·보관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요. 지난 2016년엔 근로시간 기록의무를 면제하거나 간소화하는 규정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도 `일하는 방식 개혁법`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근로시간의 적정한 파악을 위해 사용자(회사)가 취해야 할 조치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내놨습니다.

우선 사용자는 시간외 근로 등이 월 80시간을 초과한 경우, 초과시간에 관한 정보를 통지해야 하고요.

또 타임카드, IC 카드, 컴퓨터의 사용시간의 기록 등 객관적인 기록을 토대로 스스로 현장에서 근로시간을 확인하고 적정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근로시간 기록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3년간 보존해야 하며 위반할 경우,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 "포괄임금제 없앴더니 연장근로 줄었어요"…회사도 근로자도 `윈윈`

특히 포괄임금제는 초과 근무가 잦은 IT 노동자들에게 `공짜 야근`을 강요하는 제도로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실제 민주노총 화섬노조 IT위원회가 공개한 IT 기업 노조 대상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약 60%가 포괄임금·고정 OT계약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IT기업에선 주52시간제 시행 후 포괄임금·고정OT제를 폐지하는 움직임도 있었는데요. 고용부 조사 결과, 고정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실 근로에 따라 연장근로수당을 정산해 지급한 결과, 연장근로시간 20~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T업계에선 개발이나 시험, 거래처 요청 등 특정한 업무 마감이 있을 때는 일명 `크런치 모드(고강도 근무)`가 필요한데요, 포괄임금제 폐지 후 과거에 비해 크런치 모드 소요시간은 통상 1주 50시간에서 43시간으로 7시간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또 포괄임금·고정 OT를 폐지한 기업의 경우 사업주도 "근로시간이 곧 비용"임을 인지해 근로시간은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기업의 채용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이들 기업은 근로시간 관리를 위해 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로제를 활용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크런치모드 기간은 통상 1주일 이내이므로 1개월 단위 선택근로제로도 충분히 법정근로시간 내 업무처리가 가능했던 겁니다.

주 52시간제 개편으로 근로시간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으로 늘어난다는 데에,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고 근로자의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관행처럼 굳어져 왔기에 당연시됐던 `포괄임금제`만 제대로 개선되도 일한 만큼 근로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포괄임금제 개혁이 전제돼야만 `기업과 근로자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근로시간 연장`이라는 정부의 아젠다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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