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이 고금리 여파로 신음하는 사이 퇴직금·성과급 등 `나홀로 돈잔치`를 벌인 은행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은행의 돈 잔치`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하고 나서며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서민금융 확대 및 손실흡수 능력 확충 등을 압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 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금융위 업무보고에서도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연일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지만, 업무 범위와 중요성 측면에서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있다. 외환위기 때 은행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받아 기사회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일 은행이 과점 형태로 영업이익을 얻는 특권적 지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일부 고위 임원 성과급이 최소 수억 원 이상 된다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적하기도 했다.
이 금감원장은 "지난해 유동성 악화 시기에 당국과 타 금융권이 도와준 측면이 있는데 이를 오롯이 해당 회사와 임원의 공로로만 돌리기에 앞서 그런 구조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기본적으로 민간기업인만큼 성과급 체계나 경영진 연봉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은행권이 막대한 수익을 주주와 임직원 성과로만 배분하는 대신 위기 시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예상되는 손실에 비해 흡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별대손준비금`을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상반기 중 도입할 예정이다.
배당과 관련해서는 은행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특별대손준비금을 더 쌓으라고 요구할 경우 배당금 지급에 쓸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지원이나 사회 공헌 활동 내역 등도 더 면밀하게 살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앞서 올해 업무계획 발표에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실효성 있게 금융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지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은행권이 3년간 수익의 일부로 5천억원의 재원을 모아 취약계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위기도 읽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시기에 은행들이 5천억원 규모의 사회 공헌 기금을 내기로 했는데 불충분하다는 인식이 있었을 수 있다`며 "그 부분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일 은행권에 비판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고금리 시기에 `이자 장사`로 배를 불렸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등을 거치며 은행 대출이 늘어난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시장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이익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당기순이익(지배기업 지분 순이익 기준)은 총 16조5천557억원으로, 2021년보다 8.99% 늘었다. 특히 이자이익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순이자이익은 39조6천735억원으로, 전년보다 20.04% 증가했다.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반으로,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성과급 규모도 커졌다. 은행권은 올해 직원들에게 `기본급 300∼4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연말 연초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특별퇴직금으로 평균 3억∼4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법정퇴직금까지 합하면 6억∼7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많게는 10억원 이상을 받는 직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민들의 빚 부담은 급증하고 있다.
2년 전 초저금리 환경에서 수억원을 빌린 사람 중에는 이자가 처음의 2배 수준으로 오른 경우도 있다.
5대 시중은행 가운데 한 곳의 대출자 사례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기업에 근무하는 A씨(신용등급 3등급)는 2년 전(2021년 1월) 서울 서초구 래미안서초에스티지 25평형(전용면적 59.99㎡)에 8억1천500만원의 임대보증금을 내고 전세로 들어갔다.
부족한 자금 가운데 5억원은 전세대출을 받았고, 1억원의 신용대출도 더했다.
A씨의 최초 대출 당시 월 이자 상환액은 약 135만5천원(전세대출 연 2.62% 적용 109만2천원+신용대출 연 3.16% 적용 26만3천원)이었다.
그러나 이후 기준금리 줄인상과 시장금리 상승으로 코픽스·금융채 등 지표금리도 오르면서 2년 후인 지난 1월 금리 갱신 시점에는 상환액이 약 285만4천원(전세대출 연 5.54% 적용 230만8천원+신용대출 연 6.55% 적용 54만6천원)으로 불었다.
이자 부담이 2년 전(135만5천원)의 두 배를 넘어선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통령 말씀은 은행권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위기 극복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서민금융을 확대하고 금리 인상기에 어려운 사람들 돕는 등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다시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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