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무려 35도였습니다. 지금은 그 절반보다 더 낮아져 16도 소주가 인기를 끌고 있죠.
최근엔 15도의 벽까지 허물어지며 순한 소주 경쟁이 다시 달아올랐습니다.
김예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대전,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업체, 맥키스컴퍼니의 이 공장에선 14.9도 짜리 소주 생산이 한창입니다.
14.9도는 레드 와인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 업체는 저도수, 저칼로리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한다는 계획입니다.
[고봉훈 / 맥키스컴퍼니 마케팅팀장: 예전에는 (소주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기 위한 술로 쓰디 쓴 맛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는 그러한 제품으로 부드러운 맛을 더 선호한다고 판단을 했고…]
쌀과 보리 등 곡물을 활용해 직접 생산한 원주가 담긴 탱크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14.9도로 시중에 판매되는 소주 가운데 가장 낮지만, 이 증류 원주를 이용해 소주 맛을 유지했습니다.
주류업계에서 소주 도수의 마지노선으로 통한 20도를 깬 것은 지난 2006년. 17년 만에 5도 이상 더 내려갔습니다.
특히 롯데칠성이 최근 내놓은 16도 소주가 출시 5개월만에 5천만 병 이상 팔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알코올 도수를 낮춰 순해지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경쟁 업체 하이트진로도 도수를 0.5도 낮춘 '진로이즈백'을 내놓으며 저도주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손예찬 / 서울 서대문구: 도수가 낮다고 하면 별로 안 취하겠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마셨을 때 내일도 안 힘들겠다, 수업가기 편하겠다고 생각이 드니까 조금 더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김민성 / 경기도 양주시: 도수가 낮아지면 목 넘김이 부드럽고, 끝맛이 알코올 맛이 덜하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독한 술을 꺼려 하는 젊은 층을 공략한 판매 전략이 맞물리면서 순한 소주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기자 브리핑]
소주 도수, 언제부터 얼마나 낮아졌을까요?
불사를 소 술 주자, 불이 붙을 정도로 알코올의 도수가 높은 술을 의미합니다.
본래 의미완 다르게 지난 100년간 이 소주의 역사는 '도수 내리기'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강점기 1920년대 소주 제조업체들 35도의 소주를 출시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소주, 40년 넘게 35도의 독한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희석식 소주, 1960년대 식량 부족에서 비롯됐습니다.
정부가 술을 빚는데 곡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주정에 물을 타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증류식 소주가 퇴출됐고, 제조사들은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 기술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이후 1970년대에는 25도 소주가 대세였습니다.
'소주는 25도'라는 공식은 이후 25년간 계속되다가, 1998년 하이트진로가 23도짜리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깨졌습니다.
주류업계의 도수 내리기 경쟁, 이때부터 본격화됩니다.
2000년대 중반 롯데주류가 20도 '처음처럼'을 출시했습니다. 이후 주류업계는 십년 넘게 경쟁적으로 도수를 낮춰왔고, 그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재작년엔 16도 벽이, 2년 만인 올핸 다시 15도 벽마저 깨지면서, 이젠 소주가 와인과 도수 경쟁을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앵커]
앞서 보신 것 처럼 소주 도수 15도 벽이 깨질만큼 저도주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이 저도주 경쟁을 보면서 한편에선 가격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고 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내려갔다는 건, 그만큼 원재료를 덜 썼다는 의미일텐데, 소주 가격은 왜 오르기만 하냐는 건데요.
이 내용 유오성 기자와 살펴보겠습니다.
유 기자, 저도주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소주 회사들은 소비자들이 저도주를 선호해서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죠? 실제로도 그런가요?
[기자]
소비자들이 저도주를 선호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지,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일단 저도주 기준부터 좀 살펴보면요.
우리가 흔히 저도주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도수가 얼마나 낮아야 저도주라고 부를 수 있는지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소주 알코올 도수가 30도에 육박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도수가 25만 되도 저도주로 불릴 수 있는 것 처럼 상대적인 거거든요.
그래서 TV 광고가 가능한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 소주를 저도주라고 보시면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1등 소주 회사죠. 하이트진로가 팔고 있는 소주 제품을 기준으로 보면, 참이슬 오리지널(20.1도)을 고도주, 참이슬 후레시(16.5도)와 진로이즈백(16도)을 저도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이 회사 제품 판매량 비중을 따져봤더니 판매 제품 10병 가운데 9병이 저도주 제품 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저도주를 찾기 때문에 저도주 제품을 출시할 수 밖에 없다는 소주 회사들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앵커]
저도주를 내놓는 이유가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헬시플레져 트렌드도 맞물린 것도 있지만
도수를 낮추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도 좀 더 이득이라 그런 것 아닌가요?
아무래도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면 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또 소비자들이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니 더 많이 팔 수도 있잖아요.
[기자]
그래서 좀 찾아봤더니 재밌는 규칙들을 발견했습니다.
왼쪽이 하이트진로 실적이 부진했던 해 이고요. 오른쪽이 알코올 도수가 내려간 해 입니다.
보시면 실적이 부진했을 때 반드시 알코올 도수가 내려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하이트진로 영업이익이 직전 년도보다 떨어졌거나, 부진이 누적됐을 경우 알코올 도수도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죠.
흔히 알코올 도수 0.1도를 낮추면 원가 0.6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실적이 부진했을 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것이 도수 인하 카드였던 셈이죠.
하이트진로의 연간 참이슬 판매량은 18억 병 가량인데, 계산대로 라면 알코올 도수를 0.1도(0.6원↓)만 낮춰도 10억 원의 비용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앵커]
알코올 도수를 내려 비용을 줄인다는 지적에 대해 주류 회사들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요?
[기자]
도수가 내려간다고 무조건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소주 회사들 입장입니다.
실제로 소주에는 물과 주정 말고도 소주의 감칠맛을 살리고, 잡미를 없앨 감미료가 추가로 들어가거든요.
도수를 낮췄다고 해서 단순히 물을 더 타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는 만큼 소주 맛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감미료가 더 들어가기 때문에 생산 비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앵커]
저도주가 확실히 트렌드로 자리잡은 모습이긴 한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소주 알코올 도수가 지금보다 더 낮아지는 것이 가능할까요?
[기자]
지난 100년 간 소주 도수는 거의 20도가 내려왔잖아요.
업계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지금보다 더 내려가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너무 낮으면 술 맛이 떨어진다거나 물 비린내가 난다거나 하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인데요.
이런 잡미를 잡으면서 소주 맛을 유지하려면 이제는 감미료 등 첨가물을 더 넣어야 하거든요.
주정을 줄여서 얻는 이득보다 감미료를 넣어서 나가는 비용이 더 크다보니 여기서 알코올 도수를 낮춘다면 오히려 생산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업계 설명입니다.
[앵커]
네. 유 기자 잘 들었습니다.
영상취재: 양진성 김영석 / 영상편집: 김민영 김정은 / CG: 최수련 유지민 이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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