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조류독감(조류인플루엔자)으로 계란가격이 폭등한 미국에서 닭 등 가금류에 조류독감 백신을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6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는 닭, 칠면조, 오리 등 가금류 종별로 H5N1 조류독감 백신 후보물질을 시험중이며, 미국 역사상 최초로 가금류 대상 조류독감 백신 접종을 대규모로 실시하는 방안을 업계 지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
미국의 H5N1 조류독감 사태는 작년 초에 시작됐다. 지금까지 47개 주에서 5천8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야생 조류의 발병 사례도 흔하다. 올해 1월 미국의 계란 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70% 올랐다.
조류독감이 토착화된 중국, 이집트, 베트남 등에서는 이미 조류독감 백신을 접종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계두(鷄痘·fowlpox) 등 다른 조류 감염병에 대해서만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에머리대 애니스 로언 교수는 "바이러스가 덜 퍼지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이에 노출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며, 가금류에 대한 조류독감 백신 접종 구상에 찬성하는 의견을 NYT에 밝혔다.
그는 또 이 구상이 실현되면 인간 대 인간으로 쉽게 전파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상에 대해 닭을 키우는 축산업자들은 반대, 칠면조를 키우는 다른 축산업자들은 찬성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닭고기 생산용 육계(broiler) 사육업자들을 대표하는 전국계육협회(NCC)의 톰 수퍼 선임부사장은 미국 육계업체들이 닭고기의 18%를 수출하고 있다며, 백신 접종으로 수출 길이 막히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칠면조 사육 업계는 백신 접종을 수용하겠다는 분위기다. 조류독감에 따른 피해가 워낙 크고 생산된 칠면조 고기 중 9%만 수출하기 때문이다.
다만 백신 프로그램이 시행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동물용 감염병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보통 3년이 걸리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개발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업계 규모다. 미국의 육계 생산량은 연간 90억 마리가 넘는다.
가금류에 대한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 질병 전파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증상 발견을 어렵게 해 전염성이 높은 변종의 출현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으나, 조류독감 전문가인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병원 소속 리처드 웨비 교수는 "그런 증거는 별로 없다"고 NYT에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들은 조류독감 사태 대응책으로 백신 프로그램만 검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현재로서는 가금류 농장들이 직원들에 대한 살균 절차를 강화하는 등 생물안전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