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폐막하는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통해 출범한 시진핑(국가주석)-리창(총리) 체제 앞에는 미국의 고강도 견제에 맞서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이번 양회 때 제시한 '5% 안팎'의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는 일과 미국의 전방위 외교·경제적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두 국정 목표는 서로 긴밀히 연계돼 있다고 보여진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무원 총리·부총리 등 수뇌부에 최측근인 리창(총리), 딩쉐샹·허리펑(이상 부총리)을 앉히면서 당정통합을 가속화하고, 자신의 1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는 경제와 미중 전략경쟁의 두 전선에 나설 준(準)전시 태세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안정과 연속성 방점…5% 성장 위해 '국진민퇴' 조정 예고
우선 경제는 지난 5일 국무원 총리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5.0% 안팎'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면서 '안전운행'을 예고했다.
중국이 경제면에서 발목을 잡았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데다, 작년 3.0% 성장에 그친 데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할 때 보수적인 목표 설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또 '안정 속 성장'을 의미하는 '온중구진(穩中求進)'을 견지할 것이라며 소비의 회복·확대를 통한 내수 진작을 강조하고, 민간경제와 플랫폼 경제의 발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기조는 이미 약 3개월 전인 지난해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밝힌 것들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중국이 본격 저성장 시대로 접어드는 길목에 와 있다는 일각의 예상 속에 공산당 일당 체제 안정의 핵심 요소인 경제 성장세 유지를 위해 경제 영역에서만큼은 '공동부유'와 '국진민퇴(국유기업은 강해지고 민영기업은 퇴조)'로 대표되는 '시진핑 색채'를 한동안 희석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경제의 안정 중시 기조는 중앙은행 총재와 재정부장, 상무부장, 농업·농촌부장 등을 유임시킨 12일 국무원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행정부 수뇌부인 총리·부총리가 전면 교체된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와 주요 경제 담당 부장(장관)들을 유임시킨 것은 작년 말 중앙경제공작회의 때 제시한 경제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 공급망 배제 공세 맞서 과학기술 자립자강에 '사력'
이번 양회에서 과학기술 자립·자강은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국무원은 7일 기구개편 방안을 설명하면서 당 기구인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될 것이라며 과학기술 부문에 대한 '집중통일영도'가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시 주석이 직접 과학기술 부문을 챙기겠다는 의미였다.
당 중앙 과기위의 지휘를 받을 정부 측 과학기술부는 연구·개발 쪽 본연 업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슬림화했다.
시 주석은 5일 전인대 장쑤성 대표단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우리가 예정대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과학기술의 자립과 자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8일 군과 무장경찰 부대의 전인대 대표단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는 "국가 실험실을 잘 건설·관리·운용해 자주적·독창적 혁신을 강화하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과 자강에 속도를 내야 한다"면서 국방과학기술 공업이 더욱더 '강군승전(强軍勝戰)'의 방향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과학기술 자립·자강 강조는 미국의 공급망 배제 압박에 맞서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한·미·일·대만)에 한국이 참여하고,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동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자체적 외교력과 경제 압박 카드만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공세를 차단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듯 중국은 자체 기술 돌파구 마련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출신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류궈중과 장궈칭을 부총리로 발탁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됐다.
◇국방비 증액폭 3년 연속 상승…외교는 미국 중심 질서 깨기 박차
이번 양회에서 공개된 중국의 올해 국방예산(1조5천537억 위안·약 294조원)과 인사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분명한 의지도 읽혔다.
중국의 전년 대비 국방예산 증가율은 2021년 6.8%, 2022년 7.1%에 이어 올해 7.2%로 3년 연속 상승 곡선을 그렸다.
상승 폭은 전년 대비 0.1%P에 그쳤지만 작년 경제성장률이 3%에 그쳤고, 올해는 1991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 목표치(5% 안팎)를 제시한 것을 감안하면 '소폭 증액'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중국 최대의 무기생산 및 공급, 수출업체인 중국병기공업그룹 총경리를 지낸 장궈칭을 부총리로 기용한 것도 국방력 강화 기조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력 강화가 지향하는 바는 미국과의 전반적 군사력 격차를 좁히고, 대만해협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러시아산 무기 구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제재 리스트에 올린 리상푸를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으로 기용한 것 역시 선명한 대미 메시지로 읽혔다.
외교 부문에서는 주미대사 출신으로,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상징 인물로 꼽히는 친강 외교부장에게 외교부장 발탁 3개월만에 한 계단 위인 국무위원직을 겸임하게 하며 무게를 더 실어준 인사가 많은 것을 말해줬다.
친 부장은 지난 7일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만약 미국 측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잘못된 길을 따라 폭주하면 (중략) 필연적으로 충돌과 대항에 빠져들 것"이라며 "그 재앙적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미국에 직설 화법으로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친강 부장이 당일 회견에서 러시아 세력권이었던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을 연내에 불러 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힌 일과, 중·러간 무역결제에서 달러 대신 양국 통화를 더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일, 양회기간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일 등이 갖는 상징성이 컸다고 평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이 쇠퇴하고, 미국이 점점 중동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 영토 서쪽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국 동쪽의 한미일 등과 점점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서쪽의 우군을 공고히 하고,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읽혔다는 분석이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12일 "중국은 이번 양회 기간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중국은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뿐 아니라 경제적 패권에도 도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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