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10곳 중 3곳이 정부의 거듭된 요구에도 결국 회계자료를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들 노조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고 현장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당정은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에도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노동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고 과태료로 강하게 압박하면서 노정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는 13일까지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조합원 수 1천명 이상의 노조가 86곳으로 집계됐다고 14일 밝혔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15일부터 다음달 초까지 노조법을 위반한 86곳에 대해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사전 통지 이후에는 10일간의 의견 제출 기간을 거쳐 해당 노조에 최종적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노조법 제27조는 '노조는 행정 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고, 제96조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달 1일 조합원 수 1천명 이상의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19곳에 서류 비치·보존 의무와 관련된 표지 1쪽과 내지 1쪽의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제출 기한인 지난달 15일까지 보름 동안 120곳(36.7%)만이 정부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했고 고용부는 시정과 소명 기회를 줬다.
하지만 전날 오후 6시까지 319곳 중 233곳(73%)은 자료를 제출했고, 86곳(26.9%)은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상급 단체별로 살펴보면 민주노총의 제출 비율이 37.1%에 그쳤다. 한국노총은 81.5%, '기타 미가맹 등'은 82.1%가 제출했다.
고용부는 다음 달 중순부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한 현장 조사에노 나선다.
현장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는 노조에는 별도 과태료를 부과한다. 만약 노조 측이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이정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노조 사무실에 회계 관련 서류를 비치·보존하는 것은 조합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법상 의무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 것은 조합원의 알 권리를 약화하고, 노조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며 "법 위
반 사항에 대해 엄정 대응하는 한편 현행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는 정부가 회계 자료 속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월권행위이며, 노조 자주성을 침해하는 위법한 개입행위를 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고용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도 이의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한노총은 성명을 통해 "국회 입법조사처 검토보고서와 고용노동부 노조법 업무 메뉴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노조법 14조는 조합원에 대한 의무이지 정부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노총을 비롯한 산하 노동조합은 이미 조합원 알권리 보장을 위해 서류보존·비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노총은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과 노조의 민주적·자주적 운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회계 등 내부자료를 공개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노조를 사회부패세력으로 매도하고 노조혐오를 조장하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라면 절대 응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 주에 노동조합에 월권적이고 위법한 운영개입을 자행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권남용 협의로 고발하는 한편, 정부의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도 이의신청과 과태료 재판 등 전면적인 법률대응에 돌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전날 민당정 협의회에서 노동 조합원의 절반 이상의 요구가 있거나, 횡령·배임 등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노조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안 추진을 공식화함에 따라 노정간 대립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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