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SVB 파산이 2008년 금융위기를 제대로 끝내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돈을 풀어서 막았을 뿐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SVB 파산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적인 개선보다는 금융권을 위한 막대한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 등의 카드만을 썼기 때문이다.
이는 1929년 대공황 때 금융규제뿐 아니라 사회보장제 도입, 노조 활동 활성화 등 구조적 개혁까지 마련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책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그는 "약 400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자율을 0%로, 그것도 10년 이상 유지한 적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양적완화를 통해 엄청난 돈을 금융권에 풀었다"며 이로 인해 "결국 자산 거품이 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을 사실상 10여년간 폐쇄한 것과 같다"고 그는 진단하면서 이에 따라 시장에 자금이 넘쳐나게 됐고, "투자의 옥석 가르기가 안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강화 등 규제 조처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가 2008년 정도의 위기로 치닫지는 않겠다고 설명하면서도, 문제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주 69시간 노동 등 노동시간 연장 논의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임금을 낮춰서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논리와 같다며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가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간도 같은 논리다. 주 100시간 일하는 나라도 있는데, 이런 나라들과 노동시간을 놓고 경쟁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렇게 경쟁하는 건 도저히 안 되는 것이고, 결국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저출생 문제 해결과도 노동시간 연장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교육 연구에 투자하며, 젊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가 약 10년 만에 국내에 출간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를 소재 삼아 경제와 관련한 각종 편견과 오해를 깨뜨리면서 다 함께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과 비전을 제시한 책이다.
대표적인 편견의 예가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천혜의 자원만 믿고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것이다. 바나나, 코코넛, 망고 등이 사방에서 자라고, 춥지 않기 때문에 열대 지방 사람들은 튼튼한 집을 지을 필요도,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으며 산업을 발전시킬 동력도 약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모욕적인" 주장일 뿐이다. 실제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 가난하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독일인, 덴마크인, 프랑스인보다 60~80%, 미국인이나 일본인보다 25~40%가량 근로 시간이 더 길다.
장 교수는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라고 반박한다.
그는 책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산업화', 특히 제조업 육성과 기술 혁신, 그리고 집단적 기업가 정신을 꼽았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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