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이 미국 중소은행 퍼스트 시티즌스에 인수되면서 지난 40년간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해온 SVB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7일(현지시간) 퍼스트 시티즌스가 SVB의 모든 예금과 대출을 모두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SVB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파산 절차에 들어간 지 17일 만이다. SVB는 마침내 이날 '간판'을 내렸다.
1983년 실리콘밸리 파이낸셜 자회사로 설립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지 꼭 40년 만이다.
SVB는 그동안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며, 그 이름처럼 실리콘밸리와 함께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으로 성장했다.
기술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 벤처 캐피털 산업의 중심에 있었고, 스타트업에 예금과 대출은 물론, 투자 및 프라이빗뱅킹 서비스 등도 제공해 왔다.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중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2009년 이후에만 2천300억 달러(303조원) 규모의 투자유치에 참여했다. 시스코, 에어비앤비, 우버, 링크트인 등 수많은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했다.
다른 은행들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신용을 제공하면서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했고, 이 신용은 스타트업이 다른 자금을 조달하는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단기간의 기준금리 급등에 따른 위기관리 실패는 결국 SVB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시장 전반에 자금 융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그동안 맡겨둔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예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SVB는 그동안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기준금리 급등으로 미 국채는 가치가 하락했고, SVB는 예금이 줄자 18억 달러(2조3천4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내며 이를 매각해야 했다.
이 소식은 대규모 뱅크런에 불을 붙였고, 결국 파산으로 이어졌다.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SVB가 사라지면서 자금 지원이 필요한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타트업은 지난해 자금이 고갈되고 가치가 대폭 하락하는 힘든 시기를 겪은 후 올해에는 상황이 회복하기를 기대했다"며 "그러나 SVB 붕괴로 실리콘밸리 전역의 불안과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벤처 캐피털 회사 NFX가 최근 스타트업 창업자 8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SVB의 붕괴가 이미 어려운 자금 조달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또 22%는 올해 어떤 기금도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3천500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투자 회사 테크스타즈의 마엘레 가벳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여름에 스타트업이 문을 닫아야 할지, 매각해야 할지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라며 "SVB 사태가 위험을 고조시켰다"고 말했다.
12개의 벤처캐피털 펀드에 지분을 가진 투자자인 비잔 살레히자데는 "지금은 벤처 자금을 조달하기에 최악의 시기"라며 자신의 펀드가 지원했던 회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향후 6개월 이내에 자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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