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다른 범죄인 인도 사례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건 그가 몬테네그로 관할권에서 형사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권 대표는 측근인 한모 씨와 함께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갖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됐다.
이들의 수하물에서는 벨기에 여권도 발견됐는데, 인터폴 조회 결과 이 역시 위조 여권으로 드러났다. 여권 위조는 몬테네그로에서 최대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중범죄다.
몬테네그로 현지 당국은 권 대표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식 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경을 넘은 것이다. 불법 입국이 드러날 경우 이 역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권 대표가 자신의 대한민국 여권을 사용하는 등 다른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단순 검거됐다면 곧바로 범죄인 송환 절차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가 몬테네그로 관할권에서 형사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27일 포드고리차 지방검찰청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하리스 샤보티치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한 기소가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며 권 대표의 위조 여권 사건을 기소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라고 강조했다.
권 대표가 일으킨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해 기소도 하지 않고 타국으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번 사건 담당 검사인 그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샤보티치 검사는 "권 대표가 구금된 30일 동안 신병이 인도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샤보티치 검사와 연합뉴스의 인터뷰에는 포드고리차 지방검찰청 고위 관계자 2명도 배석했다. 샤보티치 검사의 개인 의견이 아닌 포드고리차 지방검찰청의 입장인 셈이다.
다만 샤보티치 검사는 기소 이후 실제 재판으로 이어질지,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을 채운 뒤에야 범죄인 송환 절차로 넘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투자자에게 50조원이 넘는 피해를 준 권 대표는 4개국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해외 도피 11개월 만에 검거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싱가포르까지 신병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일단은 몬테네그로의 사법 처리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몬테네그로 현지 법원은 지난 24일 권 대표와 측근 한모 씨에 대해 구금 기간 연장을 명령했다.
법원은 권 대표 등이 싱가포르에 주거지를 둔 외국인으로 도주 우려가 있고, 신원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구금 기간 최장 30일 연장을 결정했다.
권 대표의 변호인인 브란코 안젤리치는 권 대표에게 모국어인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등 방어권을 박탈당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권 대표 측이 구금 기간 연장에 불복해 항소할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지켜봐야 할 변수로 꼽힌다.
비로소 송환 절차에 착수하더라도 권 대표 측이 몬테네그로 당국의 신병 인도 결정에 대해 소송으로 맞설 가능성이 있다. 샤보티치 검사는 권 대표를 몬테네그로 현지 변호사 2명이 돕고 있다고 전했다.
권 대표가 미국과 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송환이 불발될 수 있도록 면밀히 대응 준비를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국내 피해자들은 권 대표 송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권 대표가 현지에서 법적 조력을 최대한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송환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는 권 대표의 변호인인 안젤리치와 만나 권 대표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여러 차례의 통화, 문자, 이메일에도 해당 변호사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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