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동휘의 첫 인상은 오다가다 마주치는 수더분한 동네 아저씨 같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안방극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각본 강윤성)의 주연 배우 이동휘와 마주했다.
50분가량 이야기를 나눈 이동휘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연기에 대해서는 후회보다는 보완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인터뷰 내내 본인의 연기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진정한 연기자의 모습이다.
지난 22일 시즌2 마지막화가 공개된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최민식 분)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의 벼랑 끝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필리핀 현장은 전지훈련 같았어요. 할 수 있는 게 대본 보는 것밖에 없었어요. 씬 분석하고 캐릭터 간 유기적으로 만들려 고민했죠.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 집중도 면에서 최고였어요.”
이동휘는 극중 차무식과 함께 카지노의 판을 짜는 사업 파트너 패밀리 양정팔 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파트를 오가는 서사 속에서 재기발랄함과 흑화, 배신 등의 반전매력을 안정적이면서도 흡인력 있게 보여줬다.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정팔이 실제라면 저도 손절할 정도로 애정이 가지 않았던 터라고요. 고민이 많았어요. 너무 자기만 아는 무책임한 캐릭터로서, 저도 이해가 안가는 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실제 주변에서 우는 모습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를 본 이후 캐릭터에 대한 서사가 잡혔어요. 처음부터 진심을 갖지 못한 인물, 어쩌면 그것도 하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캐릭터 이해를 바탕으로 점점 삐딱선을 타며 흑화 되는 양정팔을 끝까지 밀고 나갔죠.”
‘카지노’는 결말 공개 이후 심하게 호불호가 갈렸다. 극 마지막에 정팔은 그동안 자신을 거둬 준 무식을 총으로 쏜 채 달아난다. 온갖 처세술과 기백으로 위기를 극복한 차무식이 정팔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대본은 15부까지 있었어요. 결말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이야기 했는데 선배님은 ‘차무식이 최측근에게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어요. 다만 그래서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죽는 과정이 차무식의 선택으로 벌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정팔이는 상구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생존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그런 엔딩이 현실적이지 않나 싶어요.”
극중 양정팔의 직업은 카지노 에이전트. 더운 날씨에도 정장을 고수했던 그는 땀이 나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슈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일하시는 에이전트 모습을 보니까,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정장을 입고 계신 분들도 있고, 관광객처럼 편하게 입고 계신 분들도 있고. 저는 정장을 선택했어요. 에이전트는 호텔 안에서 많이 일을 하잖아요. 밤에도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정장을 입고 폼을 유지해야죠.”
스타일링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상구 역의 홍기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흑화 되는 정팔이를 그릴 때 의상 변화는 필수였다.
“상구 형과 다른 결로 하고 싶었어요. 머리 짧게 한다고 하시 길래 저는 길게 대비를 줬죠. 상구 형은 어둡고 나는 밝게. 만화 중에 ‘아치와 씨팍’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걸 토대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더라고요. 정팔이 변화 하면서 화려했던 톤이 어두워지도록 했어요. 초반에는 다양한 패턴의 셔츠를 입다가 점점 어두워지는 디테일을 줘 보자고요.”
이동휘는 강윤성 감독을 졸라 넣은 장면도 있다. 소정에게 찾아갔다가 전화를 받지 않자 꽃다발을 던지는 장면이 본인의 아이디어였단다.
“5분 만에 급하게 찍었어요. 대본상에서는 ‘왜 내 전화 안 받지?’ 정도였어요. 그런데 회의 끝에 정팔의 얼굴에서 ‘그래 사람 사는 게 그렇지’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빌다시피 해서 찍은 장면이에요.”
‘카지노’는 1997년 방송된 ‘사랑과 이별’ 이후 최민식의 25년 만의 드라마 복귀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무식과 정팔은 같이 나오는 씬도 많아서 가족보다 더 많이 같이 시간 보냈어요. 조식 먹는 걸로 시작해서 촬영 끝나서 돌아올 때까지 같이 있었어요. 선배님 방에 ‘동휘’ 하고 방 번호가 적혀있는 걸 봤어요. 방으로 전화해서 ‘뭐 먹을래?’, ‘뭐 할래?’ 물으시길래 ‘할 게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많은 후배들에게 존재만으로 귀감이 되는 분이죠. 스태프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일찍 오셔서 준비하시고, 계속 기다려주시고 포용해주시면서도 방심하지 않게끔 다독이는 등대 같은 존재예요. 함께 해왔던 장면 장면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현장 모니터링하면서 본 최민식 선배의 눈은 정말 배우 그 자체였어요. 각기 다른 배우와의 호흡으로 분위기를 채워나가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느꼈어요.”
이동휘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캐릭터호흡을 펼쳤다. 특히 손석구(오승훈 역)와의 호흡은 파트2의 핵심주제로서 많은 관심과 함께 호평으로 이어졌다.
“처음 ‘카지노’ 찍으러 도착했을 때는 석구 형을 잘 몰랐어요. 필리핀 분들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시더라고요. ‘나의 해방일지’ 흥행 이후 나중에는 호텔 로비에 팬들이 기다리고 있고, 저한테 ‘석구 히얼?’이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석구 형은 본인 역할 이상으로 인물들의 개연성과 입체적 설정들을 함께 고민하는 성실한 배우에요. 그와 함께 하면서 작품을 임하는 자세를 정말 많이 배웠어요. 늘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에요.”
이동휘는 지난 2013년 영화 ‘남쪽으로 튀어’로 데뷔했다.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류동룡 역할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와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영화 ‘극한직업’에 영호 역으로 출연해 또 한 번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카지노’에서는 정팔 역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로서의 개인적인 보람은 일반극장에서의 관객들이 웃는 것을 볼 때 느끼곤 해요. 그러한 부분들만 놓고 보면 선호도를 그쪽에 놓아야할 것도 같아요. 하지만 배우는 도전을 거듭해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에 따라 동룡, 영호, 정팔 등 캐릭터 하나하나마다 아쉬움들이 있어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일 걸요.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생계와 도전, 두 지점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독립영화를 꾸준히 도전하면서 플레이어로서도 아티스트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자 해요.”
그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예능 활약도 돋보였다. MBC ‘놀면 뭐하니’의 MSG워너비 멤버로 주목받는 등 화제를 모았다.
“(지)석진 형과 한 팀이 됐어야 하는 건데. 추진력이 부러워요. 그 팀에는 지석진, 강창모, 리더가 둘이에요. 박재정이 군대 가면 그 자리를 노려보려고요. 노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창피해요. 해리 스타일스 공연을 보면서 ‘나는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어요. 거미 누나 공연도 봤는데 ‘아이구 우리 후배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지 마시라고 했어요.”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미지 변신이 어렵다. 이동휘는 기본이 탄탄한 배우다. 연기력이 뒷받침되기에 이미지 변신에 도전할 수 있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내공의 소유자 이동휘는 감수성 풍부하고 유머감각도 넘치는 배우였다.
[사진제공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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