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약 먹고 있었으면 안 돼요"…보험료만 날린 가입자

장슬기 기자

입력 2023-04-10 19:10   수정 2023-04-10 19:10

    '계약 전 알릴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 해지 통보
    '속사포랩'만큼 빠른 TM 가입 절차에 가입자 인지X
    고지의무 사전 안내 더 강화돼야
    <앵커>
    건강보험에 가입할 때 꼭 필요한 절차, '계약 전 알릴의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보험 가입 전 수술이나 약 처방 이력 등을 보험사에 미리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인데, 이 절차를 잘 모르는 가입자들이 많은 데다

    실적에 급급한 텔레마케터들이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결국 가입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슬기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최근 병원에서 협심증 진단을 받고, 보유하고 있던 암보험을 통해 보험금 청구를 한 60대 최모씨.

    하지만 보험사는 최씨가 과거 협심증과 관련한 통원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은 이력을 보험 가입 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계약 전 알릴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약 2년여간 납부했던 보험료를 모두 날리게 된 최씨는 억울하기만 합니다.

    해당 보험은 보험사에서 직접 걸려온 텔레마케팅을 통해 가입한 상품이었고, 당시 가입 절차는 말 그대로 '속사포'로 이뤄져 제대로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AXA손해보험 텔레마케터 : 해당 안 되면 '아니오' 하시면 돼요.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사실이 있어요?]

    보험 가입자는 보험 가입 전 과거 병력이나 진단 이력과 관련해 보험사가 질문하는 중요한 사항을 성실하게 알려야 하는 '계약 전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암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이 암보험에 가입하려 할 때, 보험사는 가입자의 계약 전 알릴의무를 통해 위험률이 높다고 판단하면 가입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설계사가 직접 가입자와 만나 진행하는 대면채널의 경우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이 같은 중요사항을 체크할 수 있지만 문제는 텔레마케팅과 같은 비대면 채널입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의 텔레마케팅 채널의 불완전판매율(0.06%)은 대면채널(0.02%)보다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화로 이뤄지는 보험가입이다보니 대부분의 약관 설명은 알아듣기 힘든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가입자 입장에서는 계약 전 알릴 의무와 같이 중요 고지사항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경제TV 장슬기입니다.

    <앵커>
    이번 사례 단독 취재한 경제부 장슬기 기자와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장 기자, 보험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보험료를 모두 날리게 된 제보자의 사연이 굉장히 안타까운데요. 이 절차의 중요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자>
    네, 사실 보험의 경우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설계사들은 건강보험 가입 전 과거 병력이 있었는 지, 수술을 했었는 지 등 중요한 이력 등을 물어보고 체크한 뒤 가입을 진행합니다. 추후 보험사 직원이 직접 현장심사를 하거나 손해사정사에 위임해서 가입자의 과거 이력을 병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허위로 대답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실제 이번 사례의 약관에 게재돼 있는 계약 전 알릴 의무 부분을 보겠습니다. 만약 과거 병력을 숨기고 가입했다가 해당 질병으로 보장을 받으려고 한다, 이는 계약 전 알릴의무 위반에 해당돼 보험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습니다. 가입자의 과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례는 텔레마케팅, 즉 비대면으로 이뤄진 케이스입니다. 먼저 제가 이번 보험가입이 이뤄진 실제 과정 중 한 부분을 들려드리겠습니다.

    [AXA손해보험 텔레마케터 녹취본 재생]

    혹시 앵커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앵커>
    너무 빨라서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기자>
    객관적으로 들어보기 위해 제가 일부러 자막을 넣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례의 주인공은 식당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60대 여성입니다. 보험사에서 암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왔고, 기존 가입한 보험에서는 협심증 관련한 보장이 빠져있으니 월 1만9,000원 가량을 더 내고 보장을 더 받으셔라, 이렇게 가입을 유도합니다.

    이후 제가 들려드린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가입 절차가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는 과거 5년간 관련 수술 등 이력을 묻긴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과 속도인데 과연 최씨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취재하면서 받은 보험관련 제보는 불완전판매건이 상당한데, 그 중 대부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뤄진 가입이었습니다. 설계사나 텔레마케터들은 대부분 최씨와 같이 연령층이 좀 있는 가입자에게는 "어머님, 그냥 '네'라고 대답만 하시면 돼요"라고 안내합니다.

    <앵커>
    이런 문제, 보험사나 당국에서는 손 놓고 있는지?

    <기자>
    사실 이런 문제는 굉장히 오랜기간 지적돼왔습니다. 이미 금감원은 지난 2018년 '속사포랩'보다 빠른 보험상품 설명을 금지하라는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습니다. 보험상품을 설명할 때 적정한 속도를 유지하라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실적에 급급한 일부 텔레마케터들로 인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물론 일일이 감독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영업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 건도 불완전판매로 볼수는 없는건지?

    <기자>
    사실 최씨도 보험사로부터 보험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본인이 뭔가를 잘못했구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최씨의 아들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해서 AXA손해보험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었습니다. 보험사에서도 해당 녹취 파일을 확인했는데 '이해 못 할 정도로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억울했던 최씨의 아들이 이후 금감원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했더니, 그제서야 불완전판매를 인정한다며 보험계약 해지 통보는 철회하겠다는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앵커>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결국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네요.

    <기자>
    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이번 사례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 것 같은데, 먼저 전화로 가입되는 보험의 경우 귀찮다고 해서 빠르게 읽어주는 약관 등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부 설계사들은 보험가입 후 걸려오는 해피콜에 대해서도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라고 유도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내 돈이 나가는 일인 만큼 자세하게 듣고 확인한 후 가입 유무를 따져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계약 전 알릴의무'가 추후 보험료를 그대로 날릴 수도 있을 정도의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가입자도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하고요. 보험사 자체적으로도 절차를 더 강화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최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고지의무에 대한 사전 안내를 더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담당자들의 관련 교육을 더 강화하는 것 역시 보험사의 의무입니다.

    <앵커>
    경제부 장슬기 기자였습니다.

    심층분석 정리 "그렇게 빠르게 설명하시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불완전판매근절 #보험문화개선

    영상취재 김성오, 영상편집 김민영,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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