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불참하기로 한 배경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4일 찰스 3세와 전화 통화를 하고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대신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관식에 초대받았다고 밝혔으나, 불참 이유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소식이 알려지자 영국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왕실과 영-미 관계를 '무시'(snub)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보수 성향의 밥 실리 하원의원은 일생에 한 번 있는 행사를 불참하는 건 "매우 소홀한 처사"라고 영국 텔레그래프를 통해 주장했다.
영국 매체 미러의 왕실 에디터 러셀 마이어스는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아일랜드 뿌리,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뿌리를 확고히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에 불참을 결정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머니가 영국과 역사적으로 악감정의 골이 깊은 아일랜드계이고 부계도 아일랜드 혈통이 섞여 있다. 특히 그는 유년기 일부를 아일랜드계 외가 친척들에게 둘러싸인 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대관식 불참이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긴 힘들다고 주장한다. 오늘날까지 수 세기간 영국 대관식에 참석한 미국 대통령이 1명도 없는 만큼, 바이든 대통령도 단순히 관례를 이어가는 것이란 분석이다.
아메리칸대 로라 비어스 역사학 교수는 이를 "바이든 대통령 쪽의 '무시'라고 보지 않는다"며 "그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대관식에 참석한 적 없기 때문에 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어스 교수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의 영국 대관식 불참의 역사는 1800년대 빅토리아 여왕 즉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빅토리아 열풍'(Victoria Fever)이 불어닥치며 미국인 상당수가 영국 왕실에 매혹돼 있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도 불구 마틴 밴 뷰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비어스 교수는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 (대관식에) 가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때부터 (불참이) 전통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 트로이 비컴은 이후에도 1939년 대서양 횡단 하늘길이 뚫리기 전까진 해외 방문이 여의찮았고, 이는 1936년 조지 6세 국왕 대관식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의 외교적 관계는 한층 더 가까워졌지만, 대관식 참석은 또 다른 문제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외교 사절단을 보냈다.
역사학자 샘 에드워즈는 이 시기 미국은 한국전쟁에 휘말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짚었다.
다만 195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미국에 공식 방문했고,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영국 왕실 저택을 찾는 등 대관식 불참이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BBC는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재위 기간 미국 대통령 대부분과 만났을 뿐 아니라 미국에 4차례나 공식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관식에 불참하는 대신 찰스 3세 국왕의 영국 초청에는 응했다. 아직 방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영국왕 대관식 참석 여부는 현대 대서양 관계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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