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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가입 사실조차 잊은 치매환자…보험금청구는? [슬기로운 금융생활]

장슬기 기자

입력 2023-05-20 07:00  

치매·중대질병보험은 '대리청구인 지정제도' 필수
거동불가 예금주의 예금인출 절차도 개선


보험계약자가 치매나 중병으로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결여돼 있다면? 보험금은 어떻게 청구하지?

최근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본인을 위한 치매보험 또는 중대질병(CI)보험에 가입하는 금융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실제 치매가 걸리거나, 중대한 뇌졸증이나 암 등 질병에 걸리게 되면 치료에 필요한 비용은 물론이고 생활비 걱정까지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일겁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치매가 걸려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 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면?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어 거동이 힘든 상태라면 대체 내 보험금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슬기로운 금융생활에서 살펴보겠습니다.

◆ '대리청구인 지정제도' 적극 활용해야

상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이나 언어, 판단력 등의 여러 영역의 인지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임상 증후군을 의미합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을 나눠야 하는 아주 힘든 질병으로 알려져 있죠.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때문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치매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 역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부분 가입자의 목적은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 우리가족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나온 치매보험의 경우엔 생활비와 더불어 간병에 대한 가족의 부담을 덜어질 수 있는 간병비특약까지 더해져 수요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치매가 발병했을 때, 내가 보험에 가입한 것 조차 기억하지 못 한다면? 기본적으로 보험금은 계약자 본인이 수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내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 바로 '대리청구인 지정제도'입니다.

보험계약자가 치매나 중병 등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결여돼 보험금을 직접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가족 등이 보험금을 대신 청구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리청구인을 지정하는 제도입니다. 보험금 청구 관련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자와 피보험자, 보험수익자가 동일한 보험계약만 대상으로 합니다.

대리인은 계약자의 주민등록상 배우자 또는 3촌이내의 친족까지 가능합니다. 보험을 가입할 때 또는 보험기간 중 회사별 신청서류를 작성하거나 지정대리청구서비스 특약 가입을 통해 지정할 수 있습니다. 대리청구인 지정제도를 미리 활용하지 않으면 추후 실제 병에 걸렸을 때 보험금을 찾지 못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 꼭 사전에 신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대리청구인 지정 못하면 법원까지

대리청구인 지정제도는 치매보험뿐만 아니라 중대질병보험에도 똑같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에선 이를 일명 CI보험이라고 일컫는데, CI보험은 중대한 뇌졸중, 중대한 급성심근경색, 중대한 암 등 피보험자가 치명적 질병상태에 해당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보험입니다. 때문에 치매보험과 마찬가지로 보장대상에 해당할 경우 의식불명 등으로 의사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이 제도를 사전에 미처 알지 못하고 대리청구인을 지정하지 못했다면, 내 보험금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실제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민원사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부산에 사는 박모씨의 아버지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급기야 중대한 급성심근경색 진단을 받았습니다. 환자의 경우 산소호흡기를 부착했고, 거동이 어려운데다 병원비도 많이 드는 상황이라 박모씨는 아버지가 가입한 보험이 있는 지 찾아봤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A보험사에 가입한 보험이 있었고, 중대한 질병에 해당될 경우 진단보험금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박씨는 해당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박씨에게 "보험금을 청구할 권한이 없으니 정상적인 위임을 받아오라"고 통보합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법적인 위임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 박씨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금감원도 의사무능력자(환자)의 정당한 위임없이는 법적 행위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박씨는 가정법원에 성년후견개시심판청구를 통해 공식적인 법적 대리권을 얻어 보험금을 청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법무법인 측은 "성년후견개시심판청구에 대한 법률 상담을 통해 성년후견개시심판청구부터 성년후견개시결정까지는 3~6개월의 시간이 소요, 인지대와 송달료 등과 같은 별도의 소송비용도 발생하게 된다"고 안내했습니다.

◆ 거동불가 예금주의 '예외 인출방안' 마련

이처럼 국내법은 의사무능력자의 금융자산을 타인이 함부로 인출 또는 청구할 수 없도록 지정해놨습니다. 아무리 친족이라 하더라도 도덕적해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는 보험금뿐만 아니라 은행 예금에도 해당됩니다.

예금주가 중대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가족 등이 예금주의 치료비 지급을 목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려면, 원칙상으로는 예금주가 직접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거나 대리인이 위임장, 인감증명서 등을 소지할 경우에만 예금 인출을 허용합니다. 의식이 있더라도 거동이 불편하다면 사실상 위임자이나 인감증명서 등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겠죠. 때문에 금감원에는 관련 민원도 꽤나 접수된 상황입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함께 '거동이 불가한 예금주의 치료비 목적 예금 인출에 대한 절차'를 개선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예금주 본인이 예금이 인출해야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경우 '예금주의 치료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만 예외를 둔다는 게 골자입니다.

에외로 규정된 사항을 살펴볼까요. 예금주가 의식불명이라면, 지급가능 치료비가 기존에는 긴급한 수술비만 가능했으나 현재는 수술비와 입원비, 검사비 등 치료목적 비용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과거에는 병원만 가능했던 대상 의료기관도 이제는 요양병원, 요양원까지 가능합니다.

만약 예금주의 의식은 있으나 거동이 불가하고 가족이 존재한다면, 예금주 가족이 치료목적 비용으로 지급을 요청할 경우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없이도 가능하도록 개선됐습니다. 다만 은행이 병원 등 의료기관에 직접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무리하게 직접 은행에 갈 일은 사라질 전망입니다.

★ 슬기로운 TIP

위와 같은 사례는 모두 가족이 있을 경우를 가정한 상황입니다. 만약 가족이 없다면 내 예금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이 경우도 '대리인'을 지정하는 방안을 활용해야 합니다. 현행법상 내가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병원에 있다면, 대리인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등을 통해 본인의 대리의사를 서면으로 확인, 예금 인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일부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절차는 개선됐지만, 대리인을 통한 인출은 부정인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방침입니다. 다만 일부 은행은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은행원이 병원을 직접 방문하는 등 지급근거를 자체적으로 마련해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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