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른 이들이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첫 번째 탈출 행렬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4월에 시작됐다. 주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거나 러시아 내 미미한 반전 움직임에 실망한 이들이 고국을 떠났다.
망명 흐름은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전격 발표한 뒤 더 거세졌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는 남성과 그 가족들이 대거 망명길에 오르면서 조지아나 카자흐스탄행 국경에는 며칠 동안 긴 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지난달 영국 국방부는 작년 한 해 130만명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산했다. 포브스지 역시 러시아 당국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작년에만 60만∼100만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지난 15개월 동안 약 15만 5천명의 러시아인이 유럽연합(EU) 회원국이나 발칸반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임시 거주 허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망명청(EUAA)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들도 약 1만7천명에 달한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20년 초 수준의 3배가량이다. 다만 이들 중 망명 승인을 받은 사람은 2천여명에 불과하다.
EU 회원국이나 미국의 경우 전쟁 발발 후 한동안은 자국에 이미 가족이 있거나 업무 용건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비자를 신청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카자흐스탄 등 일부 국가는 올해 초 법을 바꿔 관광 목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해 러시아 이민자 유입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등 일부 친러 국가는 러시아인들의 왕래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국경을 열어두고 있다.
망명자 대부분은 50세 미만이며, IT 전문가, 언론인, 디자이너, 예술가, 학자,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직군에서 활동하던 이들이다.
러시아 이민 현황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이들 상당수가 러시아에 남은 이들보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도시 출신이라고 보고 있다.
BBC는 수십만 명의 교육받은 부유한 사람이 돈과 함께 고국을 떠나는 것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최대 민간 은행인 알파 은행은 러시아 전체 노동력의 1.5%가 러시아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대부분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이라 러시아 기업들이 인력 부족과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전쟁 초기 러시아인들이 계좌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1조2천억루블(한화 약 19조6천억원)을 인출했다고 보고했다.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경제학자 세르게이 스미르노프는 BBC에 "이런 추세로 볼 때 고숙련자들이 계속해서 러시아를 떠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종말론적인 시나리오를 좋아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 경제 생산성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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