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증시 기대주로 주목받은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대규모 유상증자 소식에 주춤하고 있습니다.
주주들은 '개인 돈으로 회사 배만 불려주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칫 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신재근 기자입니다.
<기자>
인터넷 포털사이트 에스씨엠생명과학 종목토론방의 모습입니다.
지난 9일 발표한 300억 원대 주주배정 유상증자 결정에 대해 '신약 개발 없이 주주 돈으로 회사 배만 불리는 있다'면서 회사를 맹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특히 유상증자 규모가 회사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금액이 커 주가는 이틀 만에 20% 넘게 떨어졌습니다.
갑작스런 유상증자 결정으로 주가가 급락한 바이오 기업은 한 둘이 아닙니다.
지난달 클리노믹스와 진원생명과학, CJ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에스씨엠생명과학과 똑같은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는데, 이후 주가는 모두 10% 넘게 하락했습니다.
신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이 유상증자에 나섰다 주가가 급락하는 악순환이 바이오 기업에서 유독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나빠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정부의 전환사채(CB) 발행 규제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지적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1년 말 전환사채 등이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분확대에 이용되는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전환사채 콜옵션·리픽싱 규제'를 시행했습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콜옵션 행사 가능 한도를 전환사채 발행 당시 지분율 이내로 제한했고, 주가가 하락했을 때뿐만 아니라 상승했을 때에도 전환가격을 최초 전환가격 이내로 재조정할 수 있는 '전환가격 재조정 의무화 조치'를 시행한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이전보다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당근책이 줄어든 만큼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더더욱 회사의 성장성이나 실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신약이나 기술 개발 등이 매우 어렵고, 당장 실적이 발생하지 않은 만큼 이들이 최후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유상증자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증권업계 관계자: (펀더멘털이) 안 좋은 회사일수록 (전환사채 규제) 영향이 큽니다. 시장에서 바이오 기업에 대해 전환사채를 안 삽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새로운 이익에 대해서 포기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바이오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이 당장 유상증자 말고는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바이오 기업은 유상증자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고, 주주들은 주가 하락에 반발하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CB를 활용한 일부 기업을 단속하기 위해 도입된 규제가 자칫 바이오 산업 전반의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신재근입니다.
영상취재: 이성근, 영상편집: 권슬기, CG: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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