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 진격을 멈추고 철수하기로 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치적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24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지난 몇 달간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공개 비판할 때 푸틴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침묵하자 '전술의 달인'인 푸틴 대통령이 충성스러운 부하를 내세워 군 수뇌부를 견제하려는 '큰 그림'을 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남부의 주요 군사 거점인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장악하고,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하며 크렘린궁을 위협하면서 이런 시나리오는 무색해졌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직후 직접 TV 연설에 나서 프리고진의 반란은 "반역"이라며 강경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 상황은 더 명확해졌다.
잠재적 라이벌을 견제하기 위해 엘리트 간 갈등을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까지 하면서 궁극적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해 온 그의 통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CNN은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엘리트들은 대통령의 흔들리는 정권과 그 정권이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 만든 용병 '프랑켄슈타인' 사이에서 실존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임명된 이후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극적인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프리고진이 푸틴에 굴욕감을 안겨주면서 더는 폭력에 대한 독점이 없음을 보여줬다"고 했다.
외신들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진압됐다 하더라도 그 여파가 당분간 지속돼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하고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제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해 인적·물적 피해와 내부 분열만 키웠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91년 여름 국가보안위원회(KGB)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가 몇 달 뒤 소련의 붕괴를 앞당겼다는 점을 거론하며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은 가장 큰 전략적 실수이자 조만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중대한 실수임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CNN 방송도 이번 일로 러시아 엘리트층 내에서 푸틴의 권력 장악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는 무너져가는 전선을 지키기 위해 수십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야 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다"며 "러시아 내륙 깊숙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일상화하면서 푸틴이 공들여 쌓아온 강인한 이미지에 구멍이 뚫렸다"고 분석했다.
군사 분야 싱크탱크인 '전략·기술 분석 센터'의 루슬란 푸코프 소장은 WSJ에 "장기전이 러시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푸틴과 일부 엘리트의 희망은 위험한 착각"이라며 "전쟁의 장기화는 러시아에 엄청난 국내 정치적 위험을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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