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이미 법정 심의기한을 넘겨버린 최저임금 결정 논의 만큼이나 뜨거운 고용·노동 이슈는 '실업급여'였습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전체 임금근로자 2,200여만명 중 163만명, 즉 7%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누구나 실직을 경험하면 대상이 될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동안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월급 보다 더 많은 실업급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부정적으로 실업급여를 타내거나 반복적으로 받는 이들도 늘어났죠.
이로 인해 2017년 10조원이 넘던 고용보험 적립금이 지난해엔 3조9천억원으로 쪼그라들어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 '달콤한 시럽급여'…월급보다 더, 쉬면서 더 받는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에서 실직하기 전까지 18개월 중 180일 이상을 근무했고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경우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발적 퇴사라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신청이 가능합니다. 또 근로자의 의사 능력이 있고 적극적으로 취업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전제조건입니다.
실업급여는 이처럼 저임금 실업자의 생계를 돕고, 취업 의욕을 높이기 위해 지원되고 있지만 최근 몇년간 그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최저임금이 최근 5년간 27.8%나 급격히 오르면서 불똥이 실업급여에까지 튄 건데요.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에게 주는 실업급여는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60%가 지급됩니다.
하지만 저임금 실업자는 실직 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의 최저임금의 80%를 하한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하루 6만1,568원이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는 최소 금액인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매달 최소 185만 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데요.
문제는 최저임금(월 201만580원)을 받는 근로자가 4대 보험료와 세금 등을 빼면 실수령액이 실업급여와 비슷해진다는 겁니다.
일부 실업급여 수급자는 일할 때 받던 월급의 실수령액보다 더 많이 받기도 합니다.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63만명 중 28%인 45만3천명은 최저 월 실업급여로 184만7,040원을 받았는데, 이는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보다 많았습니다.
일을 하는 근로자가 일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한거죠.
여기에 2019년에는 실업급여 보장성까지 확대됐는데요.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3~8개월에서 4~9개월로 늘리고, 실업급여 기준액은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의 퇴직 전 3개월간 하루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높인 겁니다.
이렇다 보니 실업급여를 5년간 3번 이상 받는 반복 수급 사례는 2018년부터 계속 늘어 이미 연 10만명을 넘겼습니다.
올해 3월 기준 금액으로만 8,280만∼9,126만원 정도 부정 수급이 이뤄졌고요.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많다보니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적극적으로 구직 노력을 않아 지난해 수급기간 중 재취업률은 28% 그쳤습니다.
실제 사업주에게 '비자발적' 퇴사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고, 수급 기간에 형식적으로만 구직활동을 하는 척 서류를 꾸며 수급 자격을 인정받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실업급여의 본래 목적은 실직자의 노동시장 복귀를 돕는 건데, '실업급여 의존자'만 늘릴 뿐,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셈이죠.
● 수술대 오른 실업급여…" 하한선 낮추거나 폐지"
이에 실업자의 구직 의욕을 떨어뜨리는 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제도 개선에 착수하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의 악용 사례를 두고 달콤한 보너스란 뜻의 '시럽급여'에 빗대며 강한 개혁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당정은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180일만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근무 기간 요건도 1년으로 늘리는 등의 방안도 거론되고요.
현재 국회에도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실업급여 하한액 기준을 없애는 대신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에 대한 개별연장급여를 확대하고 피보험 단위기간 요건을 180일에서 10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 '실업급여로 샤넬 산다' 논란까지…산으로 가는 제도 개편?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실업급여가 수술대 위에 올랐지만 저임금 근로자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이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야당과 노동계는 고물가·고금리의 복합위기 상황에서 저임금 대비 소득대체율, 즉 실업급여의 하한액)저 낮춘다면, 저임금 근로자가 실업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하는데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은 평균임금 수준에 비교할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인데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6~10개월인 반면, 우리나라는 4~9개월로 짧다는 것도 근거로 들고 있고요.
특히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가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의 '샤넬 실업급여' 발언으로 제도 개편의 본질이 흐려지기도 했습니다.
공청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담당자가 "여자들은 해외여행 가고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며 즐기고 있다"고 발언해 자칫 모든 여성과 청년이 사치나 즐기는 '모럴헤저드 집단'이라고 오해를 사기도 했죠.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실업급에 의존하기 보다는 빨리 근로 의욕을 높이고 재취업을 촉진해 자립을 도와준다는 취지"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입니다.
● "구직 위한 제도 본래 취지 살려야"…부정·반복 수급 차단부터
"고용보험 제도는 많이 망가졌다"
'고용보험의 아버지'으로 불리는 유길상 한국기술대학교 총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실업급여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인데요.
고용보험이란 용어나 개념도 희미했던 1980년대 초반.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근무할 당시 노동부가 실업보험제도 도입을 요청했을 때, 유 총장은 실업급여 중심의 실업보험보다는 실업 예방과 취업 촉진을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연계한 '고용보험'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이 사용됐고, 90년대 들어선 고용보험 제도 도입에 반대하던 경영계와 경제부처를 설득해 고용보험 제도 도입을 이끌어내기도 했죠.
유 총장은 지난 2009~2011년 한국노동연구원 고용보험평가센터장 재직 시절, 고용보험제도 대수술을 이미 제안했었습니다.
지급하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지급하는 부적절한 지급(incorrect pay)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실업급여 지원을 위한 사회보험 제도가 해외에서처럼 '실업보험'이 아닌 '고용보험'라고 이름 붙여진 건 실업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현금 지원보단 '재취업'에 더 중점을 두자는 의미가 컸다고 유 총장은 강조했습니다.
'실업급여'라는 명칭은 공식명칭이 아닙니다. '구직급여'가 정확한 이름인데요.
다시 말해 실업급여는 일자리를 잃고 가만히 있지 않고, 구직활동을 스스로 증명할 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반드시 근절돼야 하는 것이죠.
다만 이와 함께 선행돼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저임금 근로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부정·반복 수급자를 체계적으로 적발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이 먼저 갖춰줘야 하고요.
고물가시대에 재취업 지원이라는 실업급여 취지를 살리려면 지급액을 크게 줄이지 않은 선에서 수급 요건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울러 취약계층 등이 실업급여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취업지원 서비스와 직업훈련 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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