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번화가에서 4명의 남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한 명을 숨지게 한 조모(33·구속)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했고 발각될까 봐 두려워 스마트폰을 초기화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조씨가 휴대전화를 초기화 한 것은 범행 전날 오후인 것으로 포렌식 결과 드러나 경찰은 조씨가 최소 하루 전 범행을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고 보고 있다.
25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범행 전날인 20일 오후 5시께 자신의 아이폰XS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 포렌식 결과 같은 날 오후 5시58분부터 브라우저 등 사용 기록이 남아있지만 사건과 관련 있는 검색이나 통화·메시지·사진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씨는 경찰에서 "당일 인천 집을 나설 때부터 범행을 염두에 뒀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려고 독산동 집에 들렀는데 하필 그때 '왜 그렇게 사냐'고 말을 해서 더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당시 할머니는 조씨가 일을 하지 않는 점을 꾸짖었다고 한다. 조씨는 할머니 집을 나와 인근 마트에서 흉기 2개를 훔친 뒤 택시를 타고 신림동에 가서 흉기난동을 벌였다.
경찰은 조씨 진술을 토대로 경제적 무능과 신체조건에 대한 복합적 열등감이 범행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인천의 이모 집과 서울 금천구 독산동 할머니 집을 오가며 생활했다.
조씨는 "피해자 성별을 가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씨가 이같은 열등감 탓에 20∼30대 또래 남성을 표적 삼아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경찰에서 "남들보다 키가 작아 열등감이 있었다"는 취지로도 말했다.
경찰이 조씨의 의료기록을 조회한 결과 2018년 1월부터 범행 당일까지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기록 조회가 가능한 2013∼2017년 병력을 추가로 확인 중이다.
조씨는 이날 오후 냉담함, 충동성, 공감 부족, 무책임 등 사이코패스의 성격적 특성을 지수화하는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를 받았다. 모두 20문항으로 이뤄졌으며 40점이 '만점'으로, 국내에서는 통상 25점을 넘기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열흘 정도 걸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씨의 범행 방식과 진술만으로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반사회적 동기에 기인해 본인의 폭력적 성향을 발현한 것"이라며 "진단검사에서 사이코패스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14차례 소년부 송치 이력 등을 봤을 때 이미 그 당시에 품행장애, 적대적 반항장애(ODD) 등 문제 행동의 기미가 있었을 것"이라며 "범행 당시의 모습을 봐도 전혀 보통의 범죄자 같지 않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씨의 범행에서 '정유정 사건'과 유사한 '과잉 살상' 경향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온라인 과외 앱으로 찾아낸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23)은 사이코패스 진단검사에서 28점대 점수를 받았다.
조씨는 경찰에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지만 범행 양상으로 미뤄 살인 자체에 대한 동기가 있었을 것으로 승 연구위원은 추정했다. 단순히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진 피해자의 급소를 찌르는 등 살인의 목적과 고의성이 명확해 보인다는 것이다.
승 연구위원은 "반드시 누군가를 죽여야 할 만큼 극단적인 분노 속에서 이뤄진 범죄"라며 "오로지 살인을 지향하면서 '살인에 의한, 살인을 위한 살인'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오는 26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조씨 이름과 얼굴 등을 공개할지 결정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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