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어린이 실손보험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진단서를 제출해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성인까지 가입시키는 편법을 쓰고 있어 금융당국이 관리 강화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에만 8조여원의 역대급 수익을 낸 보험사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 어린이들의 질환을 보장하는 보험까지 온갖 상술로 수익을 내기에 급급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진단서 제출해도 안줘"…발달지연 치료비 논란 커져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발달지연 치료비 미지급 문제가 불거진 현대해상에 어린이 실손보험의 약관에 규정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고 고객에게 필요 서류 외에 자료를 요청하지 말라고 지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발달 지연·장애에 대한 어린이 실손보험은 의사의 통제 아래 어떤 치료기관에 갔느냐에 따라 개별 분쟁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약관 내용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고 약관상 보험금 청구 시 필요한 서류를 제외하고 다른 서류를 고객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어린이 실손보험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현대해상이 지난 5월부터 발달 지연·장애 어린이의 놀이·미술·음악 등 심리 치료비 지급은 대학병원에서 할 경우만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의원급·아동병원에서 민간 놀이치료사가 진행하면 실손보험 진료비 청구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금감원 등에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해상은 민간 치료사의 발달 지연 치료에 따른 비용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실손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공지하자 대한아동병원협회 등 소아·청소년 발달 지연 및 장애 치료 전문가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며 금융당국의 개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는 현대해상뿐만 아니라 어린이 실손보험을 파는 다른 보험사들에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발달 지연 자녀를 키우며 어린이 실손보험에 가입한 한 고객은 지난 6월 보험금을 받기 위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했다가 보험사로부터 지정한 병원에서 의료 자문을 받는 데 동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는 발달 지연에 부여되는 임시 질병코드인 'R'이 아닌 언어·지적장애나 자폐에 부여되는 'F' 코드를 부여받으면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고객은 부당하다며 보험사의 요구를 거절해 민원이 제기된 상황이다.
현대해상은 "의료자문은 꼭 지정된 기관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니고 종합병원이면 모두 인정된다"면서 "민간 자격자의 치료 시행 건은 의사가 치료를 주도했는지 여부에 대해 추가 심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발달 지연과 관련해 센터를 설립해 비용을 발생시키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병원들이 일부 있다"면서 "하지만 발달장애 어린이와 관련한 보험금 지급이라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유연하게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그동안 주로 은행권을 중심으로 상생 금융 노력이 있어 왔다"면서 상생 금융에 인색한 보험사들에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한 바 있다.
◇ '으른이 보험'으로 변질된 어린이 보험…명칭 제한돼
금감원은 어린이 실손보험이 보험사들의 상술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최고 가입 연령이 15세를 초과하는 경우 '어린이 보험' 상품명 사용을 제한하도록 하고 이달 말까지 기존 판매 상품 내용을 바꾸도록 했다.
이달 출시된 어린이 실손보험 신상품도 마찬가지다.
최근 현대해상을 비롯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대형 손해보험사 간에 어린이 실손보험 상품 판매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입 연령을 35세까지 확대해 어린이에게 발생 빈도가 낮은 성인 질환 담보를 불필요하게 추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서는 '어린이 보험'이 아니라 어린이 같은 어른을 뜻하는 '으른이 보험'이 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어린이 실손 보험의 가입 연령을 35세까지 확대함에 따라 어린이 특화 상품에 성인이 가입하는 등 불합리한 상품 판매가 심화됐다.
더구나 어린이에게 발생 빈도가 극히 낮은 뇌졸중, 급성심근경색 등 성인 질환 담보를 불필요하게 넣어 보험료를 올리는 편법까지 동원되는 실정이다.
저출산 비상에도 지난해 어린이 실손보험 신계약 건수는 115만여건으로 4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가입 연령을 확대해 보험사들이 경쟁적 마케팅을 한 결과로 불완전판매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고 가입 연령이 15세를 넘으면 어린이 보험이란 명칭을 쓸 수 없도록 했으며 자녀나 아이, 베이비 등 소비자가 어린이 보험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도 금지 대상에 포함돼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15세 초과를 받아주는 기존 어린이 실손보험 상품의 이달 말 판매 중지와 관련해 극성을 부리는 절판 마케팅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에 광고 및 모집 조직 교육자료 등을 철저히 점검해 불건전 영업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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