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세사기와 집값 하락 여파에 역전세와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세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선 전세금 반환보증금 보증료율을 손실률 맞게 현실화·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이를 위해 반환보증에 보증위험을 반영하고 다른 보증제도를 반환보증을 중심으로 통합해 전세대출 보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결제대금 예치제도인 에스크로 제도를 결합한 혼합보증제도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2일 발표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전세사기특별법 등 한시적인 법으로 전세의 근본적인 위험을 제거할 수는 없는 만큼 보다 근본적인 전세제도의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연구위원은 "최근 주택시장의 불안으로 전세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소위 '깡통전세'와 전세가격도 함께 하락하면서 재계약 시 임대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가 속출하면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대여했던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세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역전세의 위험이 커졌는데, 이러한 현상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인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임대보증금 미반환 위험도가 높아지는데 주택가격이 낮을수록 높아져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저가의 연립·다세대 주택일수록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시가격 대비 전세가율은 공시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낮아져, 공시가격 5억원 이상에서는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67%, 연립·다세대주택은 73%였다.
임대보증금이 반환되지 못할 위험은 저가의 주택일수록, 아파트보다는 연립·다세대주택일수록 더 높은 셈이다.
이처럼 임대보증금이 반환되지 못할 위험이 커지면서임대인이 보증금을 상환하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도 2018년 29조원에서 지난해 105조원으로 그 규모가 급증했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보증사고가 급증하자, 올해 5월 반환보증의 가입요건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 KDI는 대부분이 공시가격 3억원 미만의 주택들이 가입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문 연구위원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가 취약계층의 보증금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보증료율에 보증위험이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실제 손실률을 고려해 보증료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보증료율은 다른 보증상품에 비해 낮으며, 실제 보증사고율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인 만큼 현실에 맞게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임차인이 가입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보증료율은 0.1∼0.15%로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잔액 대비 변제금액 비율인 보증사고율(1.55%)보다 낮다.
다만 문 연구위원은 "보증료율이 현실화된다면, 저가주택의 보증료율이 증가할 수 있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단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원책으로는 임차인이 전세대출보증에 직접 가입하지 않도록 전세대출 시 임대인의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KDI는 최근 전세사기 사태를 막을 수단으로 거론되는 '에스크로' 제도를 활용한 혼합보증제도를 장기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에스크로 제도는 결제대금예치제도로 주로 전자상거래에서 활용되는데, 전세에 적용하면 임차인이 대여한 보증금을 임대인이 아닌 제3자에게 보관하도록 해 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다.
문 연구위원은 다만 "에스크로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면, 임대인이 보증금을 전혀 사용할 수 없어 전세제도 자체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고 있는 LTV(Loan to Value ratio)를 활용한 혼합보증제도를 제안했다.
전세가율이 해당 지역의 LTV 규제 이하인 경우에는 일반적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를 활용하되, 전세가율이 LTV 규제 이상이면 해당 LTV까지는 반환보증으로 보호하고, 그 이상의 보증금에 대해 에스크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아울러 KDI는 깡통전세와 역전세와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전세 대상 주택의 시세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시세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등 중개인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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