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역사상 첫 하원의장 해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사'로 유명한 스티브 배넌의 작품이라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수 주 동안 배넌은 게이츠 의원의 매카시 하원의장 축출 시도를 위한 전략을 짜줬다고 NYT는 설명했다.
배넌은 2020년 대선 결과 부정, 코로나19 방역 조치 반대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최근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그가 민주당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낙인을 찍은 공화당 정치인들을 퇴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NYT는 그가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로 우익 지지층의 분노와 격렬한 반응을 끌어내고 이를 온라인 모금으로 연결하는 순환 구조의 핵심 고리라고 분석했다.
배넌이 우익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자신의 팟캐스트를 무기로 자신을 추종하는 극우 의원들을 만들어내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축출과 공화당의 대혼란을 주도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설명도 NYT는 덧붙였다.
배넌의 힘은 하원의장 해임 다음날 풍경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날 아침 워싱턴DC의 미 의회 의사당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는 배넌의 '워 룸' 팟캐스트 쇼 녹음 스튜디오에 해임을 주도한 공화당의 맷 게이츠(플로리다)·낸시 메이스(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이 나타난 것이다.
배넌은 팟캐스트 청취자들에게 두 의원을 "어제 일(하원의장 축출)의 설계자이자 영웅들"이라고 소개하고 이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지난 수십 년간 미 의회에서 게이츠와 같은 우익 정치인들은 공화당 지도부와 보수언론 폭스뉴스, 거액의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평일 하루 4시간씩 꼬박꼬박 팟캐스트를 통해 선동을 쏟아내는 배넌의 도움으로 게이츠 등은 자신들의 지지층과 직접 소통하며 소액 온라인 모금을 끌어모을 수 있게 되면서 공화당 내 '기득권' 세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당내에서 반란을 일으킬수록 더 많은 지지와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얻게 된 셈이다.
이처럼 미 의회에서 공화당 내 '반란 세력'의 다수는 배넌에게 지지층 확보를 의존하고 있으며, 게이츠 의원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배넌 추종자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배넌은 우익 강경파 의원들에게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최대한 극우적인 법안을 내도록 격려하고 있다. "법 개정안을 최대한 충격적으로 만들고 이를 고수하라. 당신이 폭스뉴스에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틀어줄 것"이라고 배넌은 조언한다.
배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연방정부 기능 마비(셧다운) 사태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배넌은 "이제 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을 거센 불길을 만들었다"며 "사람들은 지금은 정부가 혜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정부 지출이 병균 덩어리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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