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말 경 절도죄로 고소를 당했다며 필자를 찾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무릇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말하기 마련이라 가급적 한 쪽 이야기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데, 아무리 내담인의 말을 따져보아도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 사건인 것이다. 필자가 변호사인데도 변호인을 선임할 필요조차 없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범죄가 되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의견을 드리고, 경찰 조사를 받아보되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절도죄 아닌 혐의를 추궁하면 즉시 전화 달라 하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 뒤 내담인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없어 잘 해결이 되었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수사단계에서 일찌감치 내담인의 결백이 밝혀졌으니 너무나 잘 된 일이긴 한데, 황당한 것은 혐의 없음 결정이 이미 두 달 가량 전에 이루어졌으며, 내담인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다 내담인이 외국을 방문할 일이 생겨 범죄·수사경력회보서를 발급 받고서야 이 사건 결과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는 제53조 제1항으로 수사 결과를 피의자에게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 담당 경찰관은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는 피의자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 등에게도 수사에 대하여 통지를 해주도록 규정이 있다. 앞서 살펴본 수사준칙 제53조 제1항은 고소인에도 역시 수사 결과를 통지하여 주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경찰수사규칙 제11조는 고소인 등에게 수사를 개시한 날과 그 날부터 매 1개월마다 진행 상황을 통지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일선에서 이 통지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사기죄의 피해자를 대리하여 고소를 진행한 사건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단 한 번도 통지를 받은 적이 없다. 답답한 것은 피해자이니 필자가 수시로 담당 경찰관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물론 난이도가 높은 수사의 경우 쉽게 진행이 되지 않을 수 있어서 별 진척도 없이 매달 통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와 수사는 국민의 생명, 재산, 신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대다수 국민에게 수사란 대단히 익숙치 않은 절차다. 그렇다면 설령 큰 진척은 없더라도 계속 수사 중에 있음을 성실히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수사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공공, 민간 영역을 불문하고 매우 빠르고 간이한 업무 처리로 국제사회에 명성이 높다. 국민은 앉은 자리에서 클릭 한 두 번이면 각종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고, 구매한 물건이 나에게 배달되는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익숙하다. 그런데 수사에 있어서만은 도통 감감무소식이라면, 수사 전반에 걸쳐 국민이 신뢰하리라고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8월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수사규칙상 통지 규정을, 수사를 개시한 날과 그 날부터 3개월이 지난 뒤 매 1개월마다 통지하도록 수정하였다. 국가경찰위원회에서도 수사 통지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통지를 더욱 드물게 하도록 규정을 수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생산적인 해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해법으로 보인다.
민사원 변호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대법원 국선변호인(2023), 서울고등법원 소송구조(2023), 서울남부지방법원 일반국선변호인(2023), 서울북부지방법원 일반국선변호인(2023),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2023), 사단법인 동물보호단체 헬프애니멀 프로보노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parkjs@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