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데이를 앞둔 금요일인 27일 저녁, 서울 이태원 일대는 1년 전 참사를 기억하는 듯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인파가 적지는 않았지만 평소 금요일 저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거리에서 핼러윈 장식이나 소품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이 일대에서 목격된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행인은 5∼6명 정도에 불과했다.
밤이 되자 오후만 해도 텅 비어있던 세계음식특화거리의 음식점과 술집에도 손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식점마다 스피커에서 큰 소리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종업원들의 호객 행위도 나타났다.
하지만 통행이 어려울 만큼 대규모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거리에 설치된 안전 펜스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질서를 지키며 일방통행을 유지했다. 사고가 났던 해밀톤호텔 골목도 붐비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태원을 찾은 많은 시민들은 참사 1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들은 참사 현장에 마련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참사 경위 등을 설명한 표지판을 읽으며 눈물을 보였다. 숙연한 표정으로 포스트잇 판에 추모 글귀를 적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있던 이모(48)씨는 "오늘 아침에도 TV에서 유가족들을 봤는데, 나도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안 좋았다"며 "사고가 난 골목을 둘러보고 추모 글을 적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저세상에서 편안하시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일부 상점은 '깊은 마음으로 애도합니다. 27일∼31일 휴무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여놓은 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유흥가 중 하나인 홍대 거리는 분위기가 달랐다. 핼러윈 축제에 참여할 목적으로 온 이들 때문에 밤이 깊어질수록 인파가 늘어나며 거리가 붐비기 시작했다.
홍대입구역 출구 뒤편에서는 한 노점상이 핼러윈용 장식용품을 판매했고, 오후 9시께 클럽거리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10여명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핼러윈 코스프레를 한 시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 경찰복과 유사한 복장을 한 남성 3명은 홍대 거리에 들어서려다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실제 경찰과 오인할 가능성이 있어서 불법이다.
한 10대 남성은 코스프레 목적으로 소품용 검을 들고 거리를 걷다가 경찰에게 호출을 당했다. 경찰은 실제 검이 아닌 것을 확인한 뒤 무인 보관함에 넣도록 했으나 크기 때문에 보관이 불가하자 인근 치안센터에 보관했다.
직장인 이모(19)씨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고 이번에 처음 나왔다"며 "작년에 사고도 있고 술집들이 이벤트를 많이 해서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경찰이 많아서 안전할 것 같다"고 밝혔다.
탕후루를 들고 있던 커플 김모(19)씨와 고모(21)씨도 핼러윈을 앞두고 데이트를 겸해 홍대 거리를 찾았다면서 "작년에 사건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거리가 통제되는 느낌이고 활기가 부족해 좀 아쉽다"고 했다.
관계기관의 대응은 모두 작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에는 길 한가운데 일방통행을 유도할 목적으로 200m가량 질서유지 펜스가 쳐졌다. 화살표와 함께 '입구전용', '출구전용'이라고 쓴 입간판도 세워졌다.
강남역 일대에는 혼잡도를 안내하는 전광판이 100∼200m마다 설치됐는데, '인파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주의 바랍니다'란 문구가 적혔다. 대형 건물 앞에는 구급차와 소방펌프차도 보였다. 골목 곳곳에는 2∼3명의 경광봉을 든 구청 직원과 제복 차림의 경찰관이 배치돼 인파 밀집 상황을 파악하고 동선을 관리했다.
마포구청장과 마포경찰서장, 마포소방서장 등으로 구성된 합동 순찰대가 오후 8시부터 약 1시간 동안 홍대 거리를 돌았다. 이들은 보행로에 장애물이 없는지 살피면서 아무렇게나 놓인 공유킥보드와 도로를 점유한 좌판을 정리했다. 또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노상 테이블을 철수시키고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도 단속했다.
서울시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기준 홍대 거리에는 약 8만명이 운집했다.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에는 약 1만2천명, 강남역에는 약 6만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과 경찰에 따르면 세 곳 모두 인파는 평소 금요일 저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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