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라는 단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 민간에 진출해 '마피아'만큼 끈끈한 인맥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된 단어 같은데,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회장을 맞은 우리금융그룹에 때아닌 관피아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과거 금융위원장 시절 '민간 기업에 대한 인사 개입을 막겠다'는 약속까지 했는데, 민간 금융그룹 회장이 되고 나선 후배들 챙기느라 약속을 잊은 것 같습니다.
서형교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임종룡 / 전 금융위원장 (2015년 3월 10일 국회 인사청문회 中) :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인사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런 소신을 앞으로도 관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5년 3월 열린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주요 화두는 ‘관피아’ ‘정피아’ 척결 문제였습니다.
얼마 뒤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의 기조강연 연사로 나선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던 우리은행을 콕 집어 “필요할 경우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까지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약 8년 뒤,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그 후임에 자리잡은 이가 '관 출신' 임종룡 현 회장입니다.
취임 전부터 관피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임 회장, 그런데 취임 이후엔 '관료 낙하산'까지 주요 고위직에 꽂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관료 후배인 박정훈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지난 7월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로 임명한 겁니다.
과거 금융위원장 시절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한 걸 180도 뒤집은 셈입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 : 임종룡 회장 입장에서도 이 자리(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우리금융지주가 관하고 소통하는 채널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김주현 위원장과 임종룡 회장이 워낙 친하니까 둘이서 교감은 있었던 것 같다. 금융위에서 혹시 보낼 수 있는 사람 있겠냐 해서…]
임 회장은 취임 직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경영승계 프로그램’까지 만들었지만, 우리금융경영연구소 CEO를 임명하는 과정에선 해당 프로그램을 아예 가동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밖에도 기재부·금융위·금감원 출신 인사들은 우리금융의 주요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여타 금융그룹이 투명한 지배구조와 실적 개선이란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실제로 KB금융그룹은 윤종규 회장이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룹 사정에 훤한 내부 인사에게 안정적으로 승계가 이뤄졌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1등 금융지주' 자리를 공고히 하는 등 대표적인 선순환 사례로 꼽힙니다.
반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그룹 회장과 산하 연구소장을 관료 출신 외부 인사가 맡고 있는 건 우리금융이 유일합니다.
[전 금융당국 최고위 관계자 : 관피아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시장에 깔려서 알게 모르게 그 사람들이 국가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면 민간이 갖고 있는 창의성이라든지 미래 지향성이라든지 장기적인 안목은 들어갈 틈이 없어지는 거죠.]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20년 넘게 주인 역할을 해왔던 우리은행.
민영화를 계기로 관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듯 했지만 임 회장이 취임한 후 관피아 논란은 한층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서형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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