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의회가 약 40년 전 발생한 바티칸 소녀 실종 사건을 직접 조사한다.
이탈리아 상원이 9일(현지시간) 바티칸 소녀 실종 사건과 관련한 의회 공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안사(ANSA)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3월 23일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이 법안은 여러 차례 연기된 끝에 이날 상원 관문까지 넘으며 최종 승인됐다.
조사위는 약 40년 전 비슷한 시기에 실종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와 미렐라 그레고리 실종 사건을 다루게 된다.
오를란디는 1983년 6월 22일 로마에서 플루트 레슨을 받은 뒤 귀가하던 길에 종적을 감췄다. 앞서 40일 전에는 오를란디와 동갑인 15세 소녀 그레고리가 실종됐다.
오를란디의 오빠인 피에트로는 상원 표결이 끝난 뒤 "이 소식을 확신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며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 조사위는 바티칸 조사위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는 진실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실은 영원히 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를란디의 부친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재위하던 당시 교황청 직원이었고, 오를란디 가족은 바티칸에서 살았다.
오를란디 실종을 두고 교황청 내부의 성범죄자에 의해 희생됐다는 설, 교황청과 마피아 사이의 검은 거래와 연관됐다는 설 등 여러 미확인 소문이 난무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로마 전역이 오를란디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로 뒤덮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바티칸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오를란디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모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티칸 역사상 희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이 사건은 지난해 넷플릭스가 '바티칸 걸'이라는 제목의 4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오를란디의 친구가 실종 사건 1주일 전 바티칸 고위 성직자가 성적으로 접근해왔다는 말을 오를란디로부터 들었다는 새로운 증언이 담겼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오를란디 실종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자 교황청은 올해 1월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로마 검찰도 올해 초 새로운 수사에 나섰다.
교황청에서 재조사에 나섰음에도 이탈리아 의회가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꾸린 것은 교황청이 고위 성직자가 연루됐을 수 있는 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카를로 칼렌다 상원의원은 "오를란디 실종 사건과 관련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교황청의 공식 입장을 믿을 수 없다"며 "조사위를 구성한 것은 오를란디 실종 사건에 대해 교황청 기밀문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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