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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선언 이후 미·중 관계…‘디리스킹’으로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11-20 07:52  


모든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중 정상회담이 끝났다. 군사대화 재개, 이상기후 공동 대응, 펜타닐 수출통제 등 갈등만 일관해온 양국 관계에 오랜 만에 들어보는 합의 사항 목록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양국 관계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의 실체는 게임이론을 통해 보면 명확해진다. 각국 간 관계를 조명할 때 자주 활용되는 이 이론은 참가국 간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게임’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섀플리-로스식 게임’으로 나뉜다. 디커플링은 이기적 게임인 전자에, 디리스킹은 공생적 게임인 후자에 해당한다.

1970년대 들어서자마자 ‘핑퐁 외교’로 상징되는 미·중 간 관계는 ‘커플링(coupling·동조화)’에서 출발했다. 올해 100세를 맞은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끌어냈다. 닉슨의 방문 이후 베트남 종전이 선언된 데 이어 1979년에는 미·중 간 국교가 수립됐다.

국교 수립 이후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미·중 간 관계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된다. 1989년 존 윌리엄슨 미국 정치경제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념은 중국을 포함한 비서구 국가를 글로벌화와 시장경제에 편입시켜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략을 말한다.

<그림 1>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고용시장

미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중국의 대외경제정책 기조였던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2차 대전 이후 전범인 독일을 포함한 유럽 부흥의 크게 기여했던 ‘마샬 플랜의 중국판’이라 부를 정도로 중국이 성장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중국의 WTO 가입은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까지 대중국 편향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중국이 없으면 대외경제정책이나 기업경영전략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국민총소득(GNI)이 WTO 가입 직전 미국의 17% 수준에서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에는 55%로 3배 이상 높아졌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글로벌 시대에 동참해 급성장한 것은 미국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과의 경쟁자로 키우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중 간 관계가 커플링에서 디커플링으로 변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중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인 팍스 시니카 야망을 꿈꾸었던 시진핑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대외경제정책 기조를 ‘주동작위(主動作爲·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로 급선회했다.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일대일로, 위안화 국제화, 제조업 2025, 디지털 위안화 기축통화 구상 등 중국의 세력 확장 전략인 베이징 컨센서스를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두 컨센서스 간 충돌이 정점에 이른 것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의 대중국 견제전략인 ‘나비로 패러다임’ 추진 때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수 시절부터 초강경 중국론자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함무라비 법전식으로 중국을 철저하게 배제해 나가는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했다.

디커플링 전략을 더 강화시킨 것이 3년 전에 발생했던 코로나 사태였다. 디스토피아 위기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변화를 몰고왔던 세계경제질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약화돼왔던 ‘G-something’ 체제를 더 강화시켜 각국 간 관계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력화된 지 오래됐고 유엔(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과 같은 국제기구도 그 위상이 떨어지고 합의 사항을 위반할 때 제재하더라도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국가들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국제기구 축소론’과 ‘역할 재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순으로 이어지는 초연결사회에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시대가 완전히 정착되면서 탈(脫)글로벌 추세가 자리잡았다. 규모의 이익, 외부경제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기업 위치, 자금 확보원, 공급망 등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자급자족(Autarky) 성장모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경쟁여건에서는 조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인 신워싱턴 컨센서스인설러번 패러다임처럼 기득권을 십분 활용해 공존을 모색하는 디리스킹 전략일수록 효과적이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까마귀의 약점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바로 패러다임처럼 중국을 적(敵)으로 보는 디커플링 전략은 마찰만 심해질 뿐이다.

설러번 패러다임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켜 지경학적(geo-economic) 혹은 지기학적(geo-technology) 우위를 점하는 것이 지정학적(geo-political) 우위를 점하려는 글로벌 시대의 패권 다툼과 구별된다. 안보를 연계시키는 경제도 금융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금융이 실물경제를 뒤따라가는(following) 위치에서 선도하는(leading) 위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천계획도 주도면밀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을 환류되는 ‘리쇼오링’ 정책을 주력해왔다. 당장 미국으로 환류할 수 없는 기업은 ‘니어쇼오링’과 ‘프렌즈쇼오링’ 정책을 병행해 동맹국으로 이전시켰다. 동일한 차원에서 금융에서도 리플럭스, 니어플럭스, 프렌즈플릭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설러번 패러다임과 함께 경제적으로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뒷받쳤다. 바이든 정부의 경제 컨트럴 타워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이 정책 처방은 버락 오마바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히 2009년 리먼 사태, 올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위기 때일수록 빛났다.

양대 패러다임의 성과는 눈부시다. 작년 3분기 이후 미국 경제는 2%대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3분기 성장률이 6%까지 예상되고 있다. 작년 6월 9.1%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년 만에 3%대 초반으로 안정돼 신경제 신화가 재현되고 있다. 중국과의 격차도 다시 30년 이상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탈세계화’라는 거센 뉴노멀 트랜드를 읽지 못하고 세계화의 막차를 탔던 중국과 같은 글로벌 포모(FOMO)국은 ‘쇼크’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각국의 성장률은 국민총소득(GNP)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으로 산출해왔다. GDP 성장률은 외국기업과 자금이 들어올 때는 더 높아지지만 이탈할 때는 더 떨어지는 ‘순응성’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 2> 전형적인 불황에 빠진 중국 경제

10년 전 시 주석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외국기업의 이탈세는 중국의 연간 성장률을 매년 1% 포인트 이상 훼손할 정도까지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별로는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렉스,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 소프트, 테슬라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메가 캡 8’가 이탈하고 있는 점이 중국으로서는 더 불리하다.

작년 10월 시 주석이 영수로 등극한 이후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공산당 대회가 끝나자마자 제로 코로나 대책을 풀면서 리오프닝 효과를 크게 기대했던 시 주석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양회 대회 이후 채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세도 심상치 않다.

최근처럼 외국인 자금이탈이 심할 때는 중국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뭐를 해더라도 안되는 ‘정책 무력화 명제’에 봉착한다. 금리인하,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한 신규자금 유입 효과보다 외국인 자급이탈에 따른 배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가부채가 많은 여건에서는 재정지출은 구축 효과가 심하게 발생해 경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마침내 중국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 5월 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신베이징 컨센서스인 ‘정랭경온(政冷經溫·정치 군사적으로 냉랭한 관계 속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 기류로 바뀌면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잇달아 초청한 데 이어 블링컨 국무장관, 옐런 재무장관 등 미국 정책당국자들도 잇달아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과연 미·중 간 관계가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 시대로 넘어가 대립에서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경제는 직전 정부의 ‘안미경중(安美經中)’ 디커플링 전략으로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들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겼었다. 현 정부 들어 디리스킹 전략인 ‘안미경세(安美經世)’로 전환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세계 모든 국가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2024년에는 우리 경제가 다시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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