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남극 얼음이 빠르게 녹아 서남극 빙상(ice sheet) 두께가 200년 사이에 450m나 얇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는 온난화 기온 상승이 티핑포인트(작은 변화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지점)를 넘으면 남극 얼음이 급격히 붕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남극연구소(BAS) 연구팀은 9일 과학 저널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서 서남극 빙상을 650m 깊이까지 시추해 채취한 빙핵(ice core)을 분석,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는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서남극 빙상이 갑자기 극적으로 줄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직접 증거라며 온난화로 인해 빙상 일부가 불안정해지면 이런 빙상 붕괴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극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빙상에는 전 세계 해수면을 57m 상승시킬 수 있는 양의 담수가 포함돼 있다. 특히 서남극 빙상은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의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특히 취약한 것으로 간주된다.
모델 예측 연구들은 서남극 빙상 상당 부분이 앞으로 몇 세기 안에 사라져 해수면을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빨리 녹을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BAS 이소벨 로웰 박사는 "현재 온난화보다는 느리지만 지구 기온이 상승하던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서남극 빙상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며 "그때 형성된 빙핵을 분석하면 당시의 빙상 두께와 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빙핵은 눈이 내리면서 형성된 얼음층이 수천 년에 걸쳐 얼음 결정으로 굳어지고 압축된 것이다. 각 얼음층에는 눈이 내릴 때 섞인 당시 공기와 오염 물질이 들어 있는 기포가 있어 기후와 얼음 면적 변화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2019년 서남극 빙상의 스카이트리인 얼음 고원을 651m 깊이까지 시추해 빙핵을 채취했다. 이곳은 빙상 가장자리로 지상의 얼음이 떠 있는 론 빙붕(Ronne Ice Shelf)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이다.
연구팀은 채취한 빙핵을 영하 10℃의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분석했다. 눈이 내릴 때 온도를 나타내는 안정적인 물 동위원소를 측정하고, 얼음에 갇힌 기포의 압력도 측정했다. 온도와 압력은 높이에 따라 일정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얼음의 높이와 두께를 유추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이 지역의 얼음은 8천년 전에 급격히 얇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케임브리지대 에릭 울프 교수는 "당시 200년간 얼음 두께가 450m나 얇아졌다"면서 "일단 얼음이 얇아지면 정말 빠르게 줄어드는데, 이때 분명히 티핑포인트를 지나 빙상이 붕괴하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당시 빙상 붕괴가 암반 위에 있는 서남극 빙상의 가장자리 아래로 따뜻한 물이 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얼음 일부가 암반에서 분리돼 뜨면서 지금의 론 빙붕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며, 이후 지반에서 분리돼 있던 인근 스카이트레인 얼음 고원이 급격히 얇아졌다는 것이다.
울프 교수는 "서남극 빙상이 과거에 급격한 붕괴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이 시나리오는 모델 예측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온난화로 인해 이 빙상의 일부가 불안정해지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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