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이 예금주인 예금은행의 원화예금 잔액이 19년 만에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의 원화예금 잔액은 637조5천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조8천260억원(0.9%) 줄었다.
같은 기간 가계 예금 잔액이 853억8천140억원에서 925조9천810억원으로 8.5%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기업 예금 잔액이 감소한 것은 지난 2004년 말 135조8천12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4조7천70억원(2.9%) 줄어든 이후 처음이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5년 이후 기업 예금 잔액이 줄어든 것은 2004년과 지난해뿐인 만큼 이례적인 경우로 평가된다.
이는 기업들이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에서 동시에 돈을 인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업의 요구불 예금 잔액은 115조61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조2천280억원(1.1%) 감소했고, 저축성 예금 잔액도 522조4천410억원으로 4조5천980억원(0.9%) 줄었다.
요구불 예금은 보통예금, 당좌예금 등을, 저축성 예금은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저축예금, 기업자유예금 등을 각각 포함한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지난해 연중 여러 통계로 예고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말 예금은행의 저축성 예금 중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계좌의 총예금은 772조4천270억원으로 2022년 말(796조3천480억원)보다 3.0% 줄었다.
10억원을 초과하는 저축성 예금의 예금주는 주로 기업으로, 이 잔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지난 2013년 12월 말 이후 약 10년 만이었다.
지난해 예금은행의 저축성 예금 회전율이 월 1.4회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5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 역시 저축예금과 기업자유예금 등의 평균 잔액(평잔)이 줄어든 결과로 분석됐다.
저축성 예금 회전율은 지난 2006년 월 1.0회를 넘어선 뒤 2022년까지 1.1~1.3회 사이를 오가다 지난해 1.4회로 뛰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지난해 고금리 환경에서 예금으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업 대출이 계속 늘고 연체율도 함께 오른 것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이자 갚기에도 빠듯해 예금을 늘릴 여력이 없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해 예금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잔액 기준)는 연 5.31%로, 2012년(5.43%)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들이 정기 예·적금 만기 때 재예치보다 대출 상환이라든지 현금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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