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영국판 폼페이'라고 불릴만큼 3천년 전 청동기시대 유물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유적지가 발굴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맥도날드 고고학 연구소 연구진은 잉글랜드 동부 피터버러 동쪽의 플래그 펜 분지 '머스트 팜'(Must Farm) 후기 청동기시대 유적지에서 반쯤 먹다 남은 죽, 나무 숟가락, 공용 쓰레기통, 호박·유리 구슬로 만든 목걸이 등 매우 잘 보존된 유물을 발견했다고 WP가 전했다.
유물이 이렇게 생생하게 보존된 것은 이 마을이 화재를 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WP는 보도했다.
이 마을은 유속이 느린 강 위에 기둥을 세워 만든 목재 주택 여러 채로 이뤄졌는데, 지어진 지 1년도 되지 않아 화재로 타버렸다.
이에 주택과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진흙탕 강으로 무너져 내렸고, 진흙이 타버린 것들을 마치 쿠션처럼 받쳐줬다. 습지 덕분에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폼페이도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덮여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과 흡사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유적지는 로마인들이 영국에 오기 8세기 전인 기원전 850년경 세워졌다.
플래그 펜 유적의 발굴 책임자인 마크 나이트는 "영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 중 최고일 수 있다"며 "매우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유적"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목조 원형 주택 네 채를 발견했지만, 실제 마을 규모는 두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통로로 연결된 큰 건물에는 최대 60명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추산됐다.
각 원형 주택의 넓이는 50㎡ 정도며 난로와 단열을 위한 짚, 진흙 지붕을 갖췄다. 일부 주택에는 현대의 집처럼 조리나 수면, 작업을 위한 활동 공간도 있었다.
금속 도구와 베틀 추, 농작물 수확을 위한 낫, 도끼, 면도칼 등 비슷한 물건이 각 집에서 발견돼, 각 가정이 별도의 집에서 독립된 생활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또 사냥과 방어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창 더미, 덴마크와 이란 등에서 가져온 구슬로 만든 장식용 목걸이, 고급 아마 섬유로 만든 옷, 사랑하는 가족의 유품으로 보이는 기념품과 성인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도 나왔다.
주민들은 야생 돼지, 강꼬치고기(pike)나 도미 등 생선, 밀과 보리 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한 것으로 보인다. 만든 사람의 지문이 남아있는 토기와 그 안에 나무 주걱, 그리고 동물성 지방이 섞인 밀 곡물죽이 들어있던 것도 발견했다.
발견된 그릇과 항아리에 대해 화학 분석을 실시했더니 사슴 고기 등과 꿀의 흔적도 나왔다. 고고학자 크리스 웨이크필드는 "주민들이 죽 위에 토핑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기즙을 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개의 두개골도 발견됐다. 반려동물로 키우거나 사냥에 동원됐던 것으로 보인다. 개의 배설물에서는 주인이 먹고 남은 음식물을 먹었던 흔적이 나왔다.
실내 공간에서 양 뼈가 몇점 발견됐는데, 생후 3∼6개월 정도 됐던 것으로 미뤄볼 때 화재 시점이 늦여름 또는 초가을쯤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잉글랜드의 문화재 관리 담당 공공기관인 히스토릭 잉글랜드의 던컨 윌슨 소장은 이번 발견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정교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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