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국지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던 중동 정세가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공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동 지역 내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귀에는 귀)식 보복으로 5차 중동전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중동 정세는 1973년 전 4차 중동전쟁 발생 당시와 달리 초승달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요르단·예맨 그리고 러시아)는 느슨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이집트는 이란과의 관계가 소원한 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빈살만이 주력하고 있는 ‘비전 2030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중동정세가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동 지역 밖으로도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상으로 동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도 일대일로 계획을 추진 과정에서 어렵게 쌓아놓은 두 국가와의 등거리 관계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팔레스타인 지원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따른 국력소모로 실제 참가 여부는 불투명하다.
5차 중동전쟁 발생의 열쇄를 쥐고 있는 이란의 행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 차원이나 현재 에브라힘 라이시 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실리외교를 표방하고 있어 5차 중동 전쟁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이후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하마스 배후 지원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프락치 조직을 지원하는 이란 혁명대를 통하는 길이다. 정부와는 별도로 이란 혁명대는 가지 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인민 동원군’, 예맨의 반군을 지원해 중동 지역 내 헤게머니를 꿈꾸는 음모를 갖고 있다. 라이시 정부도 이란 혁명대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미국의 원유수출대금 재동결 조치로 과연 이란이 어떤 입장을 보일 지는 ‘P5+1'(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핵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던 9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양측은 이란은 이란이 핵 개발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국제 사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핵협상 타결에 대해 그 누구보다 이란 국민이 반가워했다. 이란 국영 방송은 1979년 이후 무려 36년 만에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핵협상 타결 성명서를 생방송으로 직접 중계했다. 이란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Thank Rouhani(이란 대통령)‘를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기대감을 표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은 앞으로 남은 과제 해결에 불안과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환영했다. 독일, 프랑스 등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됐다’고 반기면서 중동 중심의 전략을 추진해 나갈 방침(pivot to Middle East)을 밝혔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란의 핵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로 중동 지역의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하지 않을까는 우려가 잠복돼 왔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핵협상 타결이 이스라엘 생존을 위협하고 핵확산 및 핵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역사적인 실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표>P5+1과 이란 간 핵협상 타결안의 주요 내용
자료 : 한국은행, 미래에셋증권
바이든 정부 들어 중동 정책이 초승달 벨트와 사우디 벨트(이스라엘·사우디아리비아?미국), 수니파와 시아파를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던 것도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개선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고립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미국의 원유수출대금 동결조치가 핵협정 파기로 악화될 경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뒤 차단됐던 중동의 최대 시장인 이란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중동 국가 가운데 인구와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이란 시장이 다시 닫히면서 세계 경제에는 이란발 악재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인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유일한 길은 국력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다. 정치권,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프로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공공선)’을 발휘해야 할 때다.
문제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원?달러 환율이 과연 외국인 자금이탈과 악순환 고리가 예상되는 1400원을 넘어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금융변수는 해당 국가의 ‘머큐리(mercury 펀더멘털)’와 마스(mars 정책) 요인을 고려해 예측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머큐리와 마스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연초 예측기관이 발표한 환율 자료를 보면 미국의 마스 요인에만 치중해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점이다. 작년 12월 점도표와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기자회견을 감안하면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대 여섯 차례까지 내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예측기관은 Fed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는 올해 하반기에는 달러인덱스 80, 엔·달러 환율 125엔, 원·달러 환율 12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초 발표한 환율 자료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숙취(hangover)’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Fed의 1선 목표인 물가지표에 헤드 페이크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3%로 한 달 전 3.1%보다 높게 나오자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되고 있다.
머큐리 요인에 있어서도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는 이해되지 않는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1.6∼2%대로 예상돼 달러인덱스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질적으로도 완전고용하에 물가가 통제되고 연착륙이 가능해 달러인덱스 구성국가에 비해 가장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스 요인도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Fed의 통화정책 잣대가 되는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에 비해 높은 여건에서 금리를 과도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볼커의 실수란 1980년대 초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이 물가가 다 잡히기 전에 금리를 내려 다시 오른 현상을 말한다.
탈달러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법화(legal tender)로 현재 달러화를 대신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 작년 11월 결제통화에서 위안화 비중은 4.61%까지 높아졌지만 달러화의 47.08%, 유로화의 22.95%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각국 외환보유액에 있어서 위안화 비중은 결제통화 비중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위안화 비중 제고 속도는 올해를 계기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공산당이 인민은행(PBOC)을 포함해 모든 금융사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위안화 결제권의 중앙은행 격인 PBOC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통화주권을 놓고 다른 참가국 간 마찰이 불가피해 탈위안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통화도 그렇다. 미국 증권거래소(SEC)의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은 비트코인의 자산 등 유틸리티 기능만 인정한 것이지 화폐 기능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SEC의 승인이 궁극적으로 화폐 기능을 안정하기 위한 수순이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으나 비트코인을 법화로 사용한 엘살바도르이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매우 어려운 문제다.
Fed는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을 가능한 늦추고 있다.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어서 앞으로 CBDC를 발행할 경우 독립적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위안화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대체해 나가면 달러 가치가 급락할 것이라는 시각이 한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 외국인 주식 순매수와 보유비중 추이
자료 : 코스콤, 한국은행
최근 대내외 환율변수는 1년 5개월 전과 너무나 유사하다. 원·달러 환율뿐만 아니라 양대 대외환율변수인 달러인덱스와 위안화 환율은 각각 105대, 7.1위안대로 같다. 오히려 코스피 지수는 300포인트 정도 더 올라 일부 경제 각료가 국내 금융시장은 문제가 없다는 자화자찬에 귀가 솔깃할 만큼 외형상으로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외국인 자금은 추세적으로 들어온 반면 내국인 자금은 밖으로 나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대책이 나온 지난 1월 중순 이후에는 외국인 자금 유입액과 내국인 자금 이탈액이 거의 일치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손님은 들어오고 주인은 나가는 자본 공동화와 함께 윔블던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윔블던 현상이 심했던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국내 기업과 금융사의 해외점포 마련 등을 위한 실수요 이외에는 없었다.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때였다. 최근처럼 자본의 공동화가 수반되지 않고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 여부에 따라 윔블던 현상이 나타났다.
윔블던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 제도 및 감독 기능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역기능이 우려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의 위상이 선진국인 영국과 달리 우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상으로 신흥국으로 떨어진 지 10년이 됐다. 최근에 윔블던 현상이 무서운 것은 포트폴리오상 지위가 신흥국이면서 자본의 공동화까지 수반돼 역기능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4.10 총선에서 ‘야대여소’의 입법적 한계를 깨지 못한 정책여건에서 외국인 자금은 금융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현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 경제 주권의 약화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여건에서는 외국인 자금은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하고 국부 유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윔블던 현상이 심화될 때마다 국부유출 방지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키위 뱅크’와 같은 금융사를 설립하거나 국민연금 (NPC) 등 공적 연기금이 대신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질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펀드가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가는 행동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추세에서는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높아진다. 이밖에 소득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서든 스톱, 즉 잘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곧바로 유출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다. 최근처럼 국제간 자금흐름이 각종 캐리 트레이드 자금에 의해 주도가 되는 여건에서는 우리 주가와 경기 향방, 그리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설 것인가는 서든 스톱 발생 여부와 현 정부의 대응에 따라 좌우될 확률이 높다.
현시점에서 우리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돌려놓는 역행적 시장개입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 자금의 ‘서든 스톱’이 발생한 확률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 될수록 주가 저평가 정도와 환차익 소지가 감소돼 이미 고수익을 얻는 스마트성 외국인 자금이 차익을 실현해 선도적으로 이탈될 소지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금융시장을 유일하게 받쳐주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서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갑자기 대혼란에 빠지는 ‘싱크홀형 푹꺼짐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당국자는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조기경보체제(EWS)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검토하고 선제적 위기방지책을 강구해 놓아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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