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이 '의대증원 추진 백지화'를 주장하며 사직과 휴진을 예고해 더 큰 혼란이 우려된다.
유감을 표명한 정부는 "백지화는 대안이 아니다"며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강조하고 있어 의정 갈등은 진정되기는커녕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비상진료 상황을 두 달 넘게 참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날지, 진료를 받기가 더 어려워질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2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는 30일 하루 응급·중증·입원 환자를 제외한 분야의 진료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은 3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며 "개별 교수의 제출일로부터 30일이 지난 시점부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직을 실행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대교수 단체들은 민법 규정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한 지 30일이 되면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며 오는 25일부터 사직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압박한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이날 수뇌부 4명이 다음 달 1일 사직한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전날 다음 달 3일부터 주 1회 휴진 방침을 밝히며, 오는 25일부터 예약된 진료와 수술 상황에 맞춰 사직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 중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나머지 병원도 휴진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의대는 서울대·연세대·가톨릭대·울산대·성균관대 등 5곳이다.
성균관대 의대를 제외한 의대 4곳이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 참여하고 있는데, 전의비는 전날 총회에서 각 병원 상황에 맞춰 다음 주 중 하루 휴진하기로 결정했다.
연세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날 오후 임시 전체교수회의를 열어 전의비에서 결정된 사항 등을 논의한 결과, 오는 30일 하루 자율적으로 휴진하기로 했다. 날짜는 정하되 참여 여부는 교수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오는 26일 사직서를 제출하는 가톨릭의대 교수들도 일주일에 하루 휴진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다.
성균관의대 비대위는 이날 교수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휴진일을 정하라는 내용을 담은 적정 근무 권고안을 배포했다.
성균관의대 비대위는 "주 52시간 근무시간을 지켜달라"며 "근무시간 초과로 피로가 누적된 교수는 주 1회 외래 및 시술, 수술 등 진료 없는 날을 휴진일로 정해 휴식을 가져 달라"고 권했다.
이로써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 5곳이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진료를 멈출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응급·중증·입원 환자에 대한 진료는 그대로 유지된다.
정부는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 움직임에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25일 사직 효력 발생' 주장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 1회 휴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일부 교수들이 예정대로 사직을 진행한다고 표명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차원에서 휴진이 되려면 병원장의 승낙하에 조정이 돼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에서 얼마만큼 의료 공백을 일으킬 만한 사안인지는 좀 더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했다.
박 차관은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 사직서 제출 한 달이 돼 자동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일률적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 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학 본부에 정식으로 접수돼 사직서가 수리될 예정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절차와 형식, 내용을 갖춰서 정당하게 당국에 제출된 사직서는 많지 않고, 이를 수리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직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나는 사표를 냈으니 내일부터 출근 안 한다"라고 할 무책임한 교수님이 현실에서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오는 25일 기준으로 사직서 수리 예정인 의대 교수 사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강조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대학 총장이나 병원장에게 사직서를 낸 교수가 전체의 약 7% 규모인 800여명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대증원 백지화' 요구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며 어렵게 출발한 의료개혁을 무산시키는 것으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고 잘라 말하며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완수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의대교수 단체들과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단체들은 대화의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백지화'를 내세우고 있다.
의협은 "적어도 전공의들에게 내려진 부당한 행정명령의 취하와 증원 과정을 멈추는 것이 대화의 자리로 이끄는 정부의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해서는 "전공의, 학생을 배제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이를 대화 거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의정 갈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공백이 더 커질 조짐을 보이자 환자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전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임모(72) 씨는 "수술받기까지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했는데, 여전히 병원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앞으로도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울산대병원에서 만난 당뇨병 환자 박모(54) 씨는 "긴급하게 투석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의사 사직이나 휴진이 영향을 줄까 걱정된다"며 "의사들이 병원에서 절대적 약자인 환자를 볼모로 잡고 싸워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유방암과 골다공증 치료 등으로 울산대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는 환자 권모(56) 씨는 "아침 뉴스를 보고 휴진 소식을 알았다"며 "지역에서 유일한 대학병원이 휴진한다고 하니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 입장에서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40대 유방암 환자는 "한 달 전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에서 예정돼 있던 진료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아 이 병원에 왔는데, (교수들이 사직하면) 정말로 받아줄 사람이 없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은 의대 교수들이 '주 1회 휴진' 계획을 밝힌 울산대의대의 수련병원이다.
의대 교수들이 입원·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진료와 수술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추후 전면 휴진에 동참하는 교수들이 늘어날 경우 환자들의 불편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빅5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휴진하는 만큼 진료가 줄어들면서 경영상 문제는 악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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